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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차별을 넘어서는 목회

By Myungsun Han

IS Hands Raised

"극단적 양극화로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에게 퍼붓는 혐오는 이미 그 치사량을 넘은 듯하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우리 교단은 탈퇴라는 가슴 아픈 시절을 지나고 있다. 자신을 변화시킬 마음이 없는 사람은 남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니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닿는 그곳에 당신 자신도 함께 가져도 놓자."

2021년 3월 16에 있었던 애틀랜타 스파숍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은 나에게 하나의 도화선 같은 것이었다. 팬데믹을 지나며 트럼프는 연신 이민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이어갔고 이에 응답하는 듯 곳곳에선 아시아인에 대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늘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무 말 않고 꾹꾹 참아왔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공동체의 질서를 해치는 일은 옳지 않다는 어린 시절부터 받아 온 한국의 집단주의적 교육의 영향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는 목사이며 나의 장소는 교회이고 나의 역할은 목회—특히 영혼을 돌보는 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 백인우월주의자가 쏜 총탄에 쓰러진 우리의 어머니와 누이를 보는 순간, 사려 깊은 척 지켜왔던 나의 침묵이 얼마나 큰 대가로 돌아왔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더 이상의 침묵은 죄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주변 몇몇 사람들과 전화 통화를 한 뒤, 연회 지도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무엇이라도 하자고. 제발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때 이후 지금껏 이 질문은 나를 떠난 적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국계 미국인이며 목회자인 우리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 모델 마이너리티(Model Minority)에 저항하라.

얼마 전 한국계 미국인들이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함께 만든 비프(Beef)라는 작품이 에미상을 휩쓸었다. 호불호가 명백히 갈리는 이 드라마 속에서 나는 그동안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옥죄던 모델 마이너리티에 대한 분명한 저항을 보았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모범적 소수계가 아니다. 교육 수준이 높지 않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으며 온순하지도 않고, 또 사회 적응력도 떨어진다. 드라마 제목처럼 무엇엔가에 잔뜩 화가 나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나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화를 모델 마이너리티 신화에 대한 분노로 읽었다. 대표 기도 때마다 우리는 우리 2세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서 성공하길 기도했다.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우기보다 성공과 안정을 추구하기를 원했다. 미국은 예수의 나라였고 이 예수의 나라에서 아시아계 이민자가 백인 다음이라는 “Asians are next in line to be white.” 말에 우쭐했다. 이제 이 거짓의 옷을 벗을 때가 되었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과 마찬가지고 우리는 예일(Yale, 대학교)에도 가고 제일(Jail, 감옥)에도 간다. 아시아계이기 때문에 우린 더 도덕적이지도 덜 도덕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예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 이상 모범적 소수계라는 칭찬에 성급히 웃거나 고마워하지 말자. 백인 다음이라는 그 알량한 지위에 만족도 하지 말자. 성공한 모범적 이민자로 남지 말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거친 미국인이 되자.

2. 정당한 대표성을 요구하라.

몇 해 전, 연합감리교회 관련 단체에서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 다양, 평등, 포용(DEI: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을 논의하는 테이블이 열리니 인터넷으로 등록하고 참가하라는 초청이었다. 이메일을 읽다 화가 났다. 패널리스트 중 아시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당장 이메일을 썼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다. 아시아계 사람이 빠졌으니 이 DEI 논의는 반쪽짜리라고, 어서 아시아인을 초청하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답장은 없었다. 오늘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연합감리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소수 인종 중 우리 한인들이 가장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숫자만큼 우리의 목소리가 들려지고 있을까? 연회 안수위원회에서 재단위원회에 이르기까지 한인과 한국계 미국인, 아시아인들의 참여와 목소리가 보장되어 있을까? 내가 섬기고 있는 대뉴저지연회(GNJAC)와 바로 강 건너인 뉴욕 연회(NYAC)엔 한인 목회자가 꽤 많다. 그렇다면 이 두 연회에 한인 목회자의 대표성은 충분히 보장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대표성은 중요하다”(Representation matters). 캐나다에서 큰 인기를 끈 김 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t Store)의 배우 폴 선형 김이 케네디인 스크린 어워드 (Canadian Screen Award) 시상식에서 한 말이다. 대표성은 교회에서도 중요하다. 응답 없는 요구이고 답변 없는 이메일이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보내자. 계속 두드리면 열릴 날이 오리니 (마태복음 7:7) 수만 개의 계란을 맞은 후 바위는 “노오랗게” 변하리라.

3.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 미안해하지 말자 (Don’t be apologetic!)

꽤 오랫동안 나는 내가 섬기는 회중에게 나의 모자란 영어를 사과하곤 했었다. 아직도 she와 he를 섞갈리고 기도 제목 중 어려운 의학 용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강단에서 참 많이도 미안해했다. 그렇게 연신 미안해하다 한번은 이 일이 꼭 사과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국식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내 탓은 아니지 않은가? 강한 한국 악센트는 오히려 내가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리고 언제부터 영어가 하나였던가? 영국, 싱가포르, 필리핀 등 참 많은 곳에 다양한 영어가 존재하니 단수 영어(English)가 아닌 복수 영어들(Englishes)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한국계인 것도, 조금 다르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결코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다름”으로 인해 차별받는다면 사과는 오히려 우리가 받을 일이다. 그러니 우리의 다름에 조금 더 당당해지자. 우리가 다른 것이, 그리고 우리의 다름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 적어도 우리 탓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끼리 편안함”의 항구를 떠나 “저들과 함께"의 바다로 나가자.

4. 다른 소수 인종과 연대하자.

연합감리교회 안에 가장 큰 소수 인종 집단인 한인들에겐 사명이 있다. 우리만의 부족주의(tribalism)에서 벗어나 다른 소수 인종과 연대하는 일이다. 연합감리교회 안에는 많은 소수 아시아계 공동체들이 작은 점처럼 표류하고 있다. 이 작은 점들을 모아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는 길고 튼튼한 선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끼리의 편안함”을 넘어서야 한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한인 목회자들과 함께 점심 식탁에 앉은 적이 있다. 오전 스케줄이 영어로 진행되어 점심이라도 한국 사람끼리 모여 편하게 한국말로 대화하며 식사하고 싶었다. 그렇게 긴장을 풀고 이야기 짐을 풀어놓으려는 순간, 눈치도 없이 필리핀 목사 둘과 백인 목사 하나가 “여기 앉아도 되지?”라며 의자를 뺐다. 순간, 나와 테이블에 앉은 다른 한인들은 긴장했다. 하지만 이내 “물론이지!”라고 대답하며 이들을 환영했다. 한국말이 오가는 편안한 점심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신선함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짧은 점심 만남이 나중에 중요한 연대로 이어질지? “우리끼리 편안함”의 항구를 떠나 “저들과 함께”하는 바다로 나가자. 하나님께선 우리 한인들에게 그만한 능력은 이미 주셨다.

5. 나도 차별과 혐오의 주체임을 인정하라.

“그래서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So You Want to Talk About Race)를 쓴 아이지오마 올루오는 인종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이렇게 트위터에 쓴 적이 있다. “반인종차별주의의 아름다움은 반인종차별주의자가 되기 위해 인종차별주의에서 자유로운 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인종차별주의는 자신을 포함해 어디에서든 인종차별주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길이다.” (The beauty of anti-racism is that you don’t have to pretend to be free of racism to be an anti-racist. Anti-racism is the commitment to fight racism wherever you find it, including in yourself. And it’s only way forward. Ijeoma Oluo, Twitter, July 14, 2019) 교만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 자신의 교만을 인정하는 것이듯 차별과 혐오를 이기려면 내 안에 시퍼렇게 살아있는 차별과 혐오를 인정해야만 한다. 차별과 혐오를 싫어하는 만큼 우리는 또 얼마나 차별하고 혐오하며 살고 있는지! 남미 사람들에 대한 우리 한인들의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극단적 양극화로 오른쪽과 왼쪽이 서로에게 퍼붓는 혐오는 이미 그 치사량을 넘은 듯하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우리 교단은 탈퇴라는 가슴 아픈 시절을 지나고 있다. 자신을 변화시킬 마음이 없는 사람은 남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니 혐오와 차별에 저항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닿는 그곳에 당신 자신도 함께 가져도 놓자.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로마서 3:23-24) 얻는 길 밖에 이 차별과 혐오의 죄에서 놓임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영어 기사 Ministry That Transcends Hatred and Discrimination

한명선 목사
UMC at Demarest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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