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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에 요구되는 기독교 교육의 과제 (4)

By Jung Hee Kim

I S Woman And Robot

III. 인공지능 시대, 기독교 교육의 과제

인공지능 시대에 교회가 당면한 문제는 많다. 편리함을 가장한 인공지능은 큰 도전이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도래하고 있는 이 시대를 부정하고, 반대해야 할 것인가? 혹여 인공지능 이전의 시대로 회귀할 것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이러한 질문에 동조할 교회는 없을 것이다. 교회가 해야 하는 것은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고, 그 파도를 타고 갈 것인지 아니면 파도에 휩쓸려 버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 있다. 당연히 변화의 물결을 타고 주도해 나가고자 한다면 교회는 다음과 같은 교육적 과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학습된 편견에 대한 이해

우리가 다양한 정보들을 습득하면서 성장하듯 인공지능도 다양한 정보들을 학습함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이 편향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다시 말해 데이터 자체가 불균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를 일명 다크 데이터 dark data 혹은 누락된 데이터라고 말한다. 데이터는 그 자체가 균형적으로 분포된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쏠림 현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한국인 중 가장 많은 분포도를 차지하는 혈액형이 A형이라거나[1]  한국인의 성씨 중 3대 성씨가 김(金), 이(李), 박(朴)이라는 사실[2]은 혈액형 분포도의 불균형, 성씨의 불균형 등을 초래하며, 자료 수집과 확보에 있어 분포 격차가 클 수밖에 없음을 말한다. 그로 인해 우리가 기본적으로 가지는 편견은 데이터 편향성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3]

인공지능의 문제점은 학습하는 데이터가 무엇이냐에 따라 편향성을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편견을 가졌다고 말하지 않는다.[4] 학습된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공지능이 기계이기 때문에 사람처럼 학연, 지연,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믿지만 실제적으로는 학습되는 데이터의 질에 따라 잘못된 결정이나 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챗GPT도 딥러닝을 통해 사실에 기반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5]  그러므로 ‘기계는 실수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온전히 신뢰할 것이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학습하고 있느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챗GPT에 “2023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누구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입니다”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6]

그런데 인공지능이 주는 답이 틀릴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공지능에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의도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여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지 가운데 인공지능의 학습된 편견을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하며, 인공지능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의사 결정 능력을 갖춰야만 비로소 인공지능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양극화의 위험성에 대한 이해

인공지능은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아니 모든 사람이 활용할 수 있지만 진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현재 챗GPT도 표면적으로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보다 복잡한 일들을 지시하기 위해서는 매달 일정 금액을 내야 한다. DALL·E 2도 2023년 4월 7일부로 유료로 전환되었기에 이용료를 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에 공짜는 없다. 사용하고 싶은 만큼 지급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없었던 때에도 보이든 보이지 않든 돈과 권력에 의해 사회적 계층은 구분되었으며, 사회적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사용에도 같은 현상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발전되고, 우리의 일상을 점진적으로 지배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첫째,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에 간극이 생기게 될 것이고, 이는 시간을 두고 그 격차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 역시도 각자가 지닌 능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치 놀이공원에 있는 놀이기구를 이용할 때, 인기 놀이기구의 경우 입장료 외 유료로 판매하는 프리미엄 티켓을 구매하여 줄을 서지 않고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이 역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고로 누군가는 챗GPT에 일정 금액을 내고 순식간에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누군가는 몇 날 며칠을 투자해야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으며, 그 보고서의 질도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게 차이가 날 것이다. 누군가는 기존 포털 사이트에 정보를 검색하고, 검색된 정보를 확인하며, 원하는 정보를 찾아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질문만 하면 알아서 원하는 내용을 one-stop으로 찾아주는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다. 이 역시도 각자가 가진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구상의 끝없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하고 학습하는 기계와 육체적, 시간적 한계가 있는 인간 사이에 정보 수집 능력은 뻔해 보일 정도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공지능의 발전이 삶의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는 단편적인 면만을 보고 환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인간의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그 스스로가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으며, 불완전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배운다. 마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평생 교육의 모토처럼 말이다. 그러나 딥러닝 deep learning 과 머신 러닝 machine learning 을 통해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정보력을 가진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은 스스로 자기 결정에 대해 회의를 가질 수 있으며, 이는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인간을 양성케 할 수도 있다.

3. 존재론에 대한 이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또 다른 종 種 의 인간이 될까? 이 질문은 늘 우리 머리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과 인간이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첫째,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인간은 ‘자기 내려놓음’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며, 비로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적인 각성과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인간은 개인적인 삶과 사회적인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고 행동하게 된다.[7]  이를 위해서 인간은 그만이 할 수 있는 예배와 기도, 명상을 기반으로 실천적인 신앙생활을 통해 영적인 성숙을 추구한다.[8]

인공지능과 인간이 동일시될 수 없다.

둘째,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다. 그러므로 기계인 인공지능은 불완전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은 인간이 곧 기계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9]  기계는 버그가 걸리면 수정할 수 있고 더 이상 실수를 일으키지 않지만, 인간은 실수하고 그것을 고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실수하는 존재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와 ‘건망증’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 의지와 건망증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바라보게도 하지만 반대의 선택도 허락한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푸념하던 광경을 떠올려 보라. 하나님께서 때마다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워주고 낮이나 밤이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었지만 틈이 날 때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으며, 그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혼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허락된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권이 있다. 이는 인공지능이 가지지 않은 인간의 고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인과론적 관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은 결정과 행동을 자유 의지로써 행한다. 설령 그 결정이 인과론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지언정 말이다.

셋째, 인간을 다양한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대로 지음받은 인간은 인공지능과 다른 존재다. 혹자들은 인공지능이 감정과 영성을 가질 날이 올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출발선상부터 다른 인간과 인공지능이 동일한 존재론적인 가치를 가질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탈근대 철학이 인간을 유기적으로 짜인 세계라는 네트워크에서 존재하는 하나의 지점 net knot 이라고 보는 관점에 근거하자면, 인공지능도 또 다른 그물코가 될 것이다.[10] 인공지능과의 상호 작용 가운데 ‘그물 조직’은 우리의 세계 network 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우리가 가진 개념이 다른 텍스트를 만나게 되고, 그것은 또 다른 개념이 되고, 텍스트 간의 상호 관계성을 통해 무한 증식하는 텍스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공지능하고만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인간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11]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사람 외 다른 것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그것 it 이 할 수 있는 것은 딥러닝 deep learning 과 머신 러닝 machine learning 을 통해 세상을 접할 수 있을 뿐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볼 때,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차별점은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직접 대면을 통한 만남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 방식이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타자와 관계를 맺고 세상 속에서 연대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만이 소통과 교제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12]

인공지능 시대에 요구되는 기독교 교육의 과제 (5)

김정희 교수 Dr. theol.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 교수, 목원대학교 웨슬리신학대학원 원장

LID Leadership Journal 2024


[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43/0000014846?sid=102 (검색일: 2023. 5. 26).

[2] http://www.ccdail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02666 (검색일: 2023. 5. 26).

[3] 용환승,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고양: 인피니티북스, 2023), 70.

[4] 토마스 람게, 누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나?, 이수영, 한종혜 역 (파주: 다섯수레, 2021), 23-25. 

[5]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02130200 (검색일: 2023. 5. 31).

[6] https://v.daum.net/v/20230130184203099 (검색일: 2023. 5. 31); 챗GPT의 데이터 자료가 2021년까지였기 때문이다.

[7] 윤승태, “4차 산업혁명시대의 교회의 역할과 방향,” 신학과 실천 58 (2018): 615.

[8] 위의 논문, 616.

[9] 박찬국, “인간과 인공지능의 미래: 인간과 인공지능의 존재론,” 현대유럽철학연구 50 (2018): 126-131.

[10] 강학순, “네트워크 공간의 ‘존재론’ 탐구-‘존재의 장소론’과 ‘구조존재론’을 중심으로,” 존재론 연구 29 (2012): 161-162. 

[11] 위의 책, 162-163.

[12] 위의 책,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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