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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018 Slingstones -  예배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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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음악


오치용 목사 [email protected] 
예수사랑한인연합감리교회 IL

 

교회 안에는 음악에 대한 양극단의 태도가 있다. 음악을 지나치게 거룩하게 여기는 태도와 수단으로 하찮게 취급하는 태도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 안의 음악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선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잘 담아낼 때 그 가치를 지닌다.

예배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은 상당히 크다. 하지만 그 비중에 비해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용에 대한 고려는 충분하지 않다. 예배 안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인다면 지금보다 풍성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해와 사용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눈다.

1. 음악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설교를 제외한 예배의 많은 부분은 음악이 차지한다. 지금 교회의 주일 예배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순서들을 헤아려 보라. 음악이 없는 예배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음악에 쏟는 관심과 시간은 설교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음악에 대해 조금만 신경을 쓰고 준비한다면 예배는 그만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가 음악을 선택하지만, 예배 안에서 함께 부르는 음악이 공동체와 공동체의 신앙을 형성한다. 이것이 음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교회 안에는 음악에 대한 양극단의 태도가 있다. 음악을 지나치게 거룩하게 여기는 태도와 수단으로 하찮게 취급하는 태도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 안의 음악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선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잘 담아낼 때 그 가치를 지닌다. 반면 설교를 잘 듣기 위한 준비의 차원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리기 위한 수단으로 값싸게 이용당할 때 음악은 그 가치를 잃어버린다. 인간의 언어는 제한적이어서 하나님을 다 담아낼 수 없다. 이때 음악의 언어는 말이 다 담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준다. 음악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해할 때 예배 안에서 음악은 더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2. 다양한 찬양이 예배 안에서 불려야 한다. 

현재 한인교회에서 불리는 찬양은 크게 찬송가와 경배와 찬양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 교단에서 한인교회를 위해 발간한 ‘찬송과 예배’도 있지만, 사용하는 교회들은 많지 않다. 찬송가 중에서도 실제 교회에서 불리는 찬양보다 불리지 않는 찬양이 훨씬 더 많다.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은 우리에게조차 낯선 음악이 되어 교회 안에서 실종되었다. 최근에 나오는 경배와 찬양의 곡들은 개인적인 신앙 고백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우리의 신앙을 폭넓게 담아내지 못한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들이 있을 때 부를 수 있는 찬양들이 아쉽다. 사회 정의에 관한 찬양, 통일에 관한 찬양들은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가 없다. 

지금보다 다양한 찬양들이 교회 안에서 불릴 필요가 있다. 찬송가 안에서도, 경배와 찬양과 ‘찬송과 예배’ 안에서도 각자의 교회에 적합한 더 많은 곡을 발굴해야 한다. 국악 찬양은 전통의 계승 차원에서도, 다른 민족들과 우리 것을 나누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익숙하지 않을 뿐 불러보면 전통 가락의 흥이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놓고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양들은 신앙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회적인 차원으로 자연스럽게 넓혀준다. 다양한 찬양들은 우리의 신앙을 폭넓게 하고 삶과 신앙을 연결해 준다. 

3. 가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찬양의 가사들은 매우 다양한 삶의 정황과 신앙의 고백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경배와 찬양곡이나 성가곡 중에는 빈약하고 진부한 가사의 찬양들이 많다. 시편이나 다른 성경의 표현들을 그대로 따온 성의 없는 가사들도 상당수다. 성경의 말씀 그대로 가져오면 은혜를 보장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은 수천 년 전의 시대에 쓰인 책이다. 지금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이 부지기수다. 성경의 표현을 날 것 그대로 인용하는 것보다 우리 시대의 삶과 신앙으로 재해석해낸 가사들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이런 부분들을 고려한 선곡이 중요하다. 

음악은 시어다. 시어는 함축적인 언어로 이 세계의 깊이를 드러낸다.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언어다. 시편에 자주 나오는 표현들인 왕, 산성, 반석, 목자와 같은 표현들은 은유(metaphor)다. 고대의 언어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는 이런 표현들이 은유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가 가진 상징성을 이해할 때 찬양의 고백은 풍성해진다. 또한, 시가 읽는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때는 자기 삶과 공명할 때다. 찬양의 가사를 자기 삶의 경험으로 가져와 재해석을 거칠 때 찬양의 가사들은 더 의미 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가사에 대한 이해, 자기 해석의 과정은 더 깊은 찬양으로 나아가게 한다. 

4. 음악적인 작은 변화들을 시도해야 한다. 

예배 형식의 급격한 변화는 혼돈을 가져오고, 변화가 없는 형식은 타성을 가져온다.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이 문제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기존의 형식 안에서 약간의 변화들을 시도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화들은 기존의 형식에서 안정감을 누리게 하면서도 예배에 신선함을 가져온다. 

찬송가를 4절까지 부른 후 후렴을 한 번 더 반복해 부르는 것은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후렴의 가사를 한 번 더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설교하는 도중이나 설교 후에 설교의 주제와 맞는 찬양을 부르는 것은 익숙했던 찬양을 새롭게 해석하게 하고 설교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효과가 있다. 설교의 주제와 맞는 성가대의 찬양을 설교 후로 배치하는 것도 좋은 시도일 수 있다. 딱딱하게 느껴지는 전통적인 반주 대신 코드 반주로 찬송가를 연주하면 곡이 새롭게 들린다. 최근에 이런 시도를 하는 음반들이 많으니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작은 교회에선 수요예배나 금요예배에서 ‘사연이 있는 찬양’을 진행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각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찬양과 사연을 듣는 일은 언제나 반응이 좋다. 아주 작은 변화들은 찬양과 예배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준다. 

5. 음악의 완성도를 조금 낮춰야 한다. 

교회 안에서 찬양을 맡은 사람 중에 대충하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대체로 열심이 지나쳐서 문제다. 예배에서의 음악의 완성도는 중요하다. 작은 실수나 준비가 덜 된 음악은 예배에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음악의 완성도를 추구하다 보면 역으로 찬양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가끔 실력이 형편없어 보이는 권사님들이나 성가대의 찬양이 은혜롭게 다가오는 것은 찬양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성의 없이 준비하거나 일부러 못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잘하려는데 신앙생활의 에너지를 지나치게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성가대나 찬양팀도 음악 연습하는 시간을 좀 덜어서 가사를 묵상하고 자기 신앙을 나누는데 할애하면 더 은혜로운 찬양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찬양에 있어서 모두가 프로일 필요는 없다.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을 드려야 한다’라는 구호는 아마추어에게는 음악적인 수준이 아니라 진심 어린 신앙의 고백을 담아내는 걸 뜻한다. 조금 서툴고 투박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어김없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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