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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5 Slingstones

SL!NGstones
치유와 회복이 있는 교회

이건우 목사 [email protected]
좋은씨앗교회 WA

이제는 교회가 사람들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것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없는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으면 교회의 경쟁력이 회복됩니다. 그것이 “치유와 회복”의 사역입니다

요즘처럼 교회가 교인들의 삶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극소화된 것을 느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교민사회에서 교회나 목회자의 이미지가 나빠진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교인들에게도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중요성이 삶에서 점점 뒤로 밀려나고 있는 것을 피부로 체험한다. 이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인 “죄사함”과 “대속의 구원”이 사람들에게 빛바랜 낡은 액세서리와 같이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 언론, 기업 문화, 대중 매체, 정치 등 모든 사회의 요소들이 이러한 사상으로 무장하고 교회를 사람들의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는 할 일이 없다고 포기하고 두 손 놓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교회가 “프로그램”과 “첨단 설비”를 갖고는 세상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아니 가장 잘할 수 있는 사역에 집중하면 이 시대에도 살 길이 열릴 것이다. 그것은 “치유와 회복”의 사역이다. 이것은 내적인 사역이고 영혼을 돌보는 사역이고, 성령이 개입하시고 도와주셔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역이다. 세상은 외적인 것과 육신적, 정신적 만족 추구와 사람의 지혜가 주체이기에 진정한 “치유와 회복”을 완벽하게 모방할 수 없다. 이 사역은 교회의 규모가 크고 적음에 관계없이 어느 교회나 할 수 있는 사역이다. 열매 있는 치유와 회복의 사역을 위해 다섯 가지 접근 방법을 제안해 본다.

1. 먼저 교회에 들어와 있는 교인들을 파악하는 일에 집중한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언 27:23)는 권면의 말씀처럼 목회자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과 삶의 상태를 잘 파악해야 한다. 과거는 잊고 지금 현재부터 ‘내 교인은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교회에서 목회를 수년 하다 보면 목회자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교인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러면 목회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거리를 둘 수 있다. 겉으로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대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 사람과 거리를 두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목회자는 이 단계에서 지금까지 어느 특정인들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을 냉각시키고, 그 사람들을 더 깊이 파악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목회자도 사람이기에 “상처받지 말아야지,” “용서해야지”하는 결심을 한다고 내면의 상처가 쉽게 치유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사명”이라는 버튼을 누르고 잠시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한 사람을 깊이 파악하는 일은 시간과 물질을 드려야 한다. 시간을 내서 만남을 자주 갖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들어야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예수는 어떻게 믿게 됐는지, 이 교회는 어떻게 오게 됐는지, 신앙생활에서 교회와 목회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인내를 갖고 한 가지씩 알아가는 단계가 필요하다.

2. 목회자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먼저 치유한다.

사람을 잘 알게 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람이 과거에 겪은 어려운 일들과 받은 상처들이 모여서 지금의 모습을 만든 것이다. 그 사람의 말투, 감정의 기복, 타인과의 관계 등은 많은 경우 타고난 성격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만들어낸 결과일 경우가 많다. 목회자나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는 대상은 많은 경우 가장 가깝고 자주 만나는 주변 인물들이다. 목회자가 받은 상처들이 치유되는 것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의 내면과 삶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처 주는 당사자의 삶 속에 있는 쓴 뿌리들, 그로 인해 일그러진 자존감 등을 잘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의 불편한 언행으로 인해서 과거처럼 상처를 심하게 받지 않게 된다. 오히려 그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목회자는 교인들로 인해 상처 입은 자신의 내면을 치유할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3. 교인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사역에 집중한다.

교인들이 기도제목을 목회자에게 나누는 것을 보면 대부분 일차적인 삶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즉,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위해 기도를 부탁한다. 이차적 문제인 마음의 고민과 정신적 갈등 등은 그다음 단계이고, 삼차적 문제인 영혼의 궁핍함 등은 잘 나누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그런데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나무로 비유해 보면,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거슬리고 불편함을 주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상처의 열매가 몸의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다. 말과 행동은 몸의 표현이므로 나무의 열매 부분이다. 결국, 뿌리까지 내려가서 그 사람의 상처의 쓴 뿌리를 치유해야 한다. 치유의 순서를 임의로 정하는 것은 너무 인위적일 수 있지만, 우선은 영혼을, 그다음은 마음과 정신을, 마지막으로 몸의 언행 순으로 치유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치유사역은 말씀전파, 말씀교육, 그리고 상담을 통한 치유이다. 영혼에 뿌리 내리고 있는 상처와 아픔은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위의 세 가지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혜에 대한 확신과 감동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 시민이라는 것을 각인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마음과 정신의 치료는 관계 속에서 발생한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들, 부부간의 갈등, 자녀와의 갈등 등 많은 깨어진 관계들이 사람의 마음에 가시와 엉겅퀴와 같이 자라고 있어서 다른 좋은 것들이 뿌리내리고 자랄 수 없는 황폐한 땅과 같은 내면을 형성시킨다. 관계에서 발생한 상처를 치유하는 길은 목회자 자신이 경험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기인한 “긍휼의 옷”을 덧입히는 것이다.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그러나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된 부모와 배우자와 형제자매, 친구, 교인 등에 대해서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고 또 그들로부터 듣고 상처받은 수많은 비하와 저주의 말들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자신이 그들의 저주의 말에 묶인 자가 아니라 이제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몸의 치유는 각성과 회개, 절제와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언행이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상처 주는 언행을 절제하고 대신 위로와 사랑의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훈련한다.

4.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성도들과 함께 팀 사역을 형성한다.

목회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사역을 책임지고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교인들의 수가 많을수록 더 어려운 일이다. 이 사역의 짐을 일차적으로 치유받고 회복된 교회의 지체들과 함께 협동사역(Team Ministry)을 한다면 훨씬 목회자의 짐이 덜어질 것이다. 열매도 훨씬 더 많이 열릴 수 있다. “치유와 회복” 사역을 위한 책임그룹(Accountability Group)을 만들어도 괜찮지만, 우리 연합감리교회의 전통인 속회를 재구성해서 사역의 장으로 사용하는 것도 좋다. 속회를 구성할 때 지리적 관계성을 벗어나서 비슷한 상처와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과 그러한 모습에서 치유되고 회복된 사람을 같이 한 속회로 엮는 방법도 좋다. 속회가 모이면 간단한 성경공부와 친교 위주의 모임에서 벗어나 진솔하게 삶을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기도하는 모임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더 효과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5. “치유와 회복” 사역의 지경을 이웃과 지역사회로 확장한다.

목회자가 아무리 전도와 교회 부흥을 강조해도 초청받아 온 새신자들이 무언가 교회에서 얻는 것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교회가 사람들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값진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섣불리 세상과 경쟁하려고 하지 말고 세상에 없는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으면 교회의 경쟁력이 회복된다. 그것이 “치유와 회복”이다. 자신이 속해있고 섬기는 교회에서 자신이 먼저 내면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 교인은 자신 있게 주변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지 못한다. 이 시대 사람들이 통상적인 경건한 분위기와 좋은 말씀이 있는 교회의 한 시간을 위해서 한 주를 손꼽아 기다리고 정성스럽게 헌금을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사람들은 더는 그렇게 순수하지도 영적이지도 않다. 돈 적게 들고 부담 없이 더 안락한 분위기에서 “교회가 주는 것들”을 외부에서 누릴 수 있다면 구태여 교회에 오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교회에 매주 나오고 있는 교인들도 신앙생활을 통해 삶에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언제 교회 출석을 그만둘지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 쌓은 친분, 정, 의리,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삶을 변화시킬 은혜에 굶주리고 목말라 있는 이 시대의 교인들을 더는 교회에 붙잡아 둘 수도 없다. 또 나누어 줄 하늘의 양식이 없는 교회들은 세상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올 수도 없다. 이제는 본질을 가지고 대결할 때이다. 기독교의 뿌리 깊은 믿음의 근성을 갖고 성령의 일하심을 체험할 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시대나 변화와 새로움을 갈망한다. 우리 한인연합감리교회들이 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교회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치유와 회복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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