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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성차별, 인종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평등 공동체

By Hannah Hwa-Young Chong

Diverse group holding hands around table

들어가는 말

교회는 평등 공동체이다. 이 평등사상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여성과 남성이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으로부터 시작하고 예수의 사역으로 완성된다. 예수의 몸인 교회는 평등 사역을 통해 교회 안과 밖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데 이바지해야 하는 소명이 있다. 이 글에서는 이 평등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의미를 고찰해본다.

하나님의 평등 창조

창세기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 1:27)라고 말한다.[i]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 형상을 본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형상을 정신, 영혼, 마음, 의지 등 영적인 요소로 보기도 하고, 실제 모습을 나타내는 외적인 요소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ii] 이 글에서는 삼위일체론을 바탕으로 하나님 형상의 의미를 살펴본다.

삼위일체는 관계의 하나님을 말해준다. 여성 신학자 캐렌 베이커-플레처는 과정신학의 입장에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며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분이 하나라는 것은 하나님이 공동체임을 뜻한다고 말한다.[iii] 즉 하나님 존재의 근본은 공동체라는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공존하고 협조하는 관계임을 뜻한다. 이 공동체는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차별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평화로운 평등 공동체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등한 역할을 하며 상호 보조하며 세상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합심한다. 이 합심하는 역할을 베이커-플레처는 동방정교회에서 잘 알려진 페리코레이시스(perichoresi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페리코레이시스는 헬라어로 상호 내존의 뜻이 있으며 “춤을 추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이 단순히 서로의 영역을 지키며 각기 따로 활동하는 분들이 아니라 춤을 추듯이 역동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삼위일체의 역동적인 관계는 신학자 이정영이 동양 사상인 주역을 바탕으로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음양 사상에서 음양이 단순히 둘로 나누어진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니고, 음 안에 양이 존재하고 양 안에 음이 존재하는 살아 움직이고 생명이 넘치는 공동체라고 한다. 이는 베이커-플래처가 강조하는 페리코레이시스와 흡사하다.[iv] 하나님은 이런 삼위일체의 역동적인 공동체로 현존하시며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우리를 정의로 꾸준히 인도하신다. 우리는 유명인사의 동상을 세우고 그들의 업적을 오래 기억하고자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은 동상을 세워 항상 일정하게 어느 곳에 고정해 놓을 수 있는 형상이 아니다. 생동력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바로 그 살아 움직이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돕고 공생하는 평등 공동체의 모습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소중하게 창조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평등 공동체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상태로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현실일까? 가부장제, 성차별, 인종차별 등의 인간 차별은 인류의 고질병처럼 오래 존재해 왔다. 이 모든 차별은 평화적 공동체이신 하나님의 존재에 반대되는 모습이다. 차별로 인해 불의의 고통받는 약자들이 있을 때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 깨어지고 상처받고 상실된다. 예수의 평등 사역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함이고 오늘날 교회도 같은 소명을 받고 있다.

교회는 예수가 이미 성립한 평등 공동체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등 사역을 이어받아 차별 없는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할 소명이 있다.

예수의 평등 사역

예수의 평등 사역은 1세기 팔레스타인 문화에서는 혁명적이었다. 당시 평등이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모든 면에서 찾기 힘든 이상이었다. 정치적으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헤롯왕은 로마 제국의 인형인 형식적 왕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주는 요소는 무엇이든 없애는 폭군으로, 예수의 탄생으로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말이 떠돌자 2세 미만 남자아이들을 다 학살하라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는 등의 폭정을 하였다. 그의 궁전은 당시 예루살렘에서 성전 다음으로 가장 큰 건축물로, 그 어려운 식민지배 하에서 민중의 피와 땀이 얼마나 착취당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궁전은 결국 후에 로마 제국에 의해 파괴되지만, 남아있는 궁전 자리는 그때 불공평하게 희생된 많은 사람의 슬픔을 보여준다.

문화적으로는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의 차별이 심했다. 그리스의 철학은 지혜를 존중하는 전통을 세우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연구되는 좋은 사상들을 남기기도 했지만, 당시 교육이란 심포지엄 등에 참여할 수 있는 엘리트 남성만을 위한 것이었다. 여성, 비자유인, 비시민권자 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했으나 대부분 정규교육의 기회가 없었다. 남성의 영역은 공적이고, 여성의 영역은 사적이라는 문화적 인식이 있었기에 여성들이 집에서 글공부하기도 했으나 이는 남편이나 아버지 등 집안의 남자들을 통해서 가능하였고, 여성의 역할은 가사 노동에 국한되어 있었다.[v]

남녀차별은 오래된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이다. 그리스와 로마 문명사회의 여성들이 어느 정도의 자유를 누리기는 했으나, 교육의 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역시 가부장제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로 오늘날의 간접민주주의보다도 더 진보된 민주주의였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큰 허점은 자유인 남자만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과 노예 등은 이 좋은 직접민주주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종교적으로 당시 유대교는 깨끗한 자와 불결한 자를 갈라놓고 차별하였다. 불결한 자란 대부분 유대교의 율법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유대교인 중에서도 가끔이라도 그 율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불결한 자가 되어 청결 의식을 거쳐야만 했고, 유대교인이 아닌 이방인들은 다 불결한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차별이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인종차별, 인종우월주의로 보면 안 되며 종교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방인들이 불결한 것은 청결법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지 단순히 얼굴색이 달라서 혹은 유대인으로서의 피를 이어받지 않아서는 아니다.

이 청결법의 배경에는 히브리인들의 디아스포라로서의 오랜 수난의 역사가 있음을 참고해야 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기원전 722년 즈음에 아시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하고, 남왕국 유다가 기원전 587년에 바빌로니아 왕국에 멸망한 후 유대인들은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아시리아 왕국의 강력한 통혼 정책으로 북왕국의 히브리인들은 유대교 전통을 많이 잃게 되고, 그 통혼의 후손 중 일부는 사마리아 지역에 정착하고 후에 예수 시대에는 사마리아인들로 알려지게 된다. 남왕국의 히브리인들은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추방되어 강제 이주를 당한다. 기원전 538년 즈음에 정권을 확립한 페르시아 제국의 완화 정책이 있고 난 뒤에야 추방당한 지 50여 년 만에 다시 고향 땅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구약성서 중 율법의 핵심이 담긴 모세오경은 이 바빌로니아 추방 시기를 거쳐 다시 고향에 돌아온 후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이미 북왕국 유대인들이 유대 전통을 많이 변형했고 마지막까지 남았던 남왕국의 땅도 없어진 상태에서 남왕국 유대인들이 그 정체성과 민족성을 잃지 않고자 하는 강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하여 외세의 억압과 강요 속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차별성을 두는 청결법이 더 강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따라 율법도 더 발전되고, 그 율법을 지키는 예식도 더 중요하게 되고, 역사를 재고찰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민족의식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유대교의 깨끗한 자와 불결한 자의 차별은 이렇듯 깊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나 몇 세기 후인 예수의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들의 차별성이 꼭 깊은 역사의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고 단순히 의례화된 양상도 있었다. 예수는 그 시대의 종교 전통으로서는 혁신적인 행동과 가르침으로 종교지도자들과 갈등이 많았다. 우선 예수는 세리와 창녀 등 불결한 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당시 유대법에 반하는 열린 식탁 공동체를 실천하였다. 또한 안식일에 병든 자를 치유하거나 그 제자들이 곡식을 따는 일을 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안식일 법에는 위반되더라도 인간의 안녕을 추구하는 인본주의를 가르치고 실행하였다. 예수 공동체는 남녀노소를 모두 포함하는 포용 공동체였다. 예수는 “어린이들을 내게 오게 하여라”(마가복음 10:13~16)라고 하고, 여성들도 남성 제자들과 함께 앉아 배울 수 있게 하였다. 당시에는 보기 힘들게 모두가 배움의 공동체에 함께 참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물가에서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가나안 여인 딸의 치유 등의 이야기는 당시의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이겨내는 사역의 좋은 사례다. 예수는 또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는 등의 가르침을 통해 경제적으로 빈부 차별이 없는 세상을 추구하였다.

이런 예수의 사역은 이미 의미를 잃은 유대교의 차별성에 대한 종교적인 저항이었고,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의 차별의 벽을 내리고, 여성과 남성 모든 사람이 함께 모이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평등 사역의 실천이었다. 그렇기에 여성 신학자 로즈메리 루터는 예수를 가부장제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사람인 동시에 다른 이들을 모든 불의한 차별로부터 해방하는 해방자라고 한다.[vi] 당시 차별의 사회적 역학을 고려해 봤을 때, 예수의 평등 사역은 참 진보적이었다. 교회는 이런 평등 사역을 근간으로 예수를 따르는 남성과 여성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평등 공동체인 교회

교회는 예수가 이미 성립한 평등 공동체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평등 사역을 이어받아 차별 없는 사회와 세상을 만드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할 소명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교회 내에서도 차별의 벽은 높기만 한 듯하다. 우선 여성 지도력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성차별의 문제가 있다. 연합감리교회에서는 1956년 첫 여성 안수 이후에 많은 여성 목사들이 배출되었다.[vii] 그러나 여성 목사들이 남성 목사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한 예로 연합감리교회의 모든 여성 목사 중 단 1%가량 만이 천 명 이상 교인이 있는 교회의 담임 목사로 파송 받아 섬기고 있다.[viii]

인종차별의 문제도 있다. 사회운동가이자 작가인 오드리 로드는 미국 내에서의 백인 선호주의를 “신화적 이상”(The Mythical Norm)이라고 말한다.[ix] 이는 비현실적인 기준으로 무엇인가를 가장 좋고 이상적으로 인식함을 뜻한다. 로드는 미국 사회의 신화적 이상은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고 젊고 건강한 이성애자 기독교 백인 남성”이라고 한다.[x] 비슷하게도 연합감리교회의 대다수 백인 교회에서 신화적 이상으로 간주하는 목사는 배우자와 자녀가 있는 백인 남성 목사일 것이다. 이런 신화적 이상에 젖어있는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 등 소수 인종 목회자는 소위 말하는 “비호감”으로 떨어지기가 쉽다. 또한 소수 인종 여성 목회자나 홀어머니인 타인종 목회자는 더 낮은 위치로 격하될 수도 있다. 백인이 아니고, 남성이 아니고, 또 목회를 도울 수 있는 배우자가 없다는 점 등은 모두 단점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진보라는 정체성을 가진 교회들은 여성 목회자를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적 이상”을 스스로 깨고, 가장 바닥으로 여겨지는 소수 인종 여성 목회자를 진정으로 원하는 백인 교회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하나님 나라는 차별이 없는 평등의 나라다. N.T. 라이트는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란 소위 말하는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기독교의 희망이 현실 세계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미 예수를 통해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고 피력한다.[xi]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평등 사역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미래에 완성되는 나라다. 교회는 예수의 몸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더 강하고 건강하게 온 세계에 퍼지도록 함께 나아가는 열린 공동체다.

오늘날의 교회는 완벽하지 않다. 차별의 모습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세상의 희망이다. 예수의 평등 사역을 계속해 나가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연합감리교회는 교회 내와 교회 밖의 차별을 없애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교회다. 그러기에 완벽하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소망이 있는 것이다. 얼굴 색깔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신학도 다르고 배경도 다른 여러 사람이 예수를 따른다는 한 가지 공통점으로 모인다. 서로 달라서 도전과 갈등도 많지만, 또 다양성을 통해 배우고자 노력하는 교단이다.

연합감리교회가 열린 공동체임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성찬이다. 성찬은 예수의 밥상 공동체를 지속하는 예식이다. 우리의 열린 성찬은 차별 없는 하나님 나라의 만찬을 표현한다. 이 성찬에 참여할 수 없는 자는 하나도 없다. 설령 이 성찬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해도 모두 초대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 남성, 어린이, 모든 인종,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성찬은 평등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성찬의 민주적이고 평등적인 모습이 교회 전체 그리고 사회 전체에 퍼져나갈 때 인간의 모습이 하나님의 형상에 더욱더 가까워진다.

끝맺는 말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다르기에 협조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서로 똑같다면 삼위(三位)가 아니고 그냥 단 하나의 위(位)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삼위일체라는 아주 독특한 신론에 기초를 둔 역동적 신앙과 신학을 말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이미 평등 공동체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 성차별, 인종차별 등 여러 차별로 인해 많이 손상된 인간 내의 하나님의 형상은 예수가 이미 시작한 평등 사역을 통해 회복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몸인 교회를 통해 차별의 벽이 완전히 무너지고 참다운 평등 공동체가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날을 희망한다.

정화영 목사 Ph.D.
[email protected]
LID Leadership Journal 2018


[i] 창세기의 두 가지 인간 창조설에 관해 비교 연구는 여성 신학자 Michelle A. Gonzalez가 쓴 책 Created In God’s Image (Maryknoll, NY: Orbis Books, 2007)에 자세히 나와 있다.

[ii] Michelle A. Gonzales, Created in God’s Image (Maryknoll, NY: Orbis Books, 2007), 6.

[iii] Karen Baker-Fletcher, Dancing with God: The Trinity from a Womanist Perspective (St. Louis, Missouri: Chalice Press, 2006), 56.

[iv] Jung Young Lee, The Trinity in Asian Perspective (Nashville: Abingdon Press, 1996), 58.

[v] Karen Jo Torjesen, When Women Were Priests (New York, NY: HarperCollins Publishers, 1993), 111-128.

[vi] Rosemary Ruether, Sexism and God-Talk Toward a Feminist Theology (Boston: Beason Press, 1983), 137-138.

[vii] 미국 감리교의 여성 목회자와 지도자의 역사는 연합감리교회의 총회여권신장위원회에서 발행한 “사역에 부름받은 여성”(Women Called to Ministry)의 부록 역사편에 자세히 나와 있고 www.gcsrw.org 에서 살펴볼 수 있다.

[viii] 총회고등교육사역부의 웹페이지에 있는 자료이다. 출처: http://www.gbhem.org/clergy/clergywomen/profile (2017년 5월 1일).

[ix] Audrey Lorde, Sister Outsider (Berkeley: Crossing, 1984), 116.

[x] Ibid.

[xi] N.T. Wright, Surprised By Hope: Rethinking Heaven, the Resurrectio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New York, NY: HarperOne, 200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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