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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열패의 신화에서 공감의 신학으로 (3)

By Hyok In Kwon

Stock diverse group with arms around shoulders

3. 공감의 신학

우승열패의 신화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힘 있는 자가 독식하는 세상이다. 그 힘은 군사력이나 자본으로부터 나올 수도 있고, 인종처럼 힘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일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단일 민족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처럼 엘리트 세력의 힘은 혈연이나 학연과 같은 연줄 관계에 의해서 고수되고 재생산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처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국가에서 인종만큼 힘의 분산을 막기 쉬운 범주도 없다. [i] 차별과 억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던 초기 청교도 이민자들이 인종 차별을 통해 또 다른 억압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ii]

사실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말은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적지 않다. 1791년 공포된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삼지 않고 어떠한 종교 행위도 인정하는 건국 정신을 포함한다. 그런 의미에서, 청교도의 국가라는 명칭은 ‘선택받은 나라’라는 건국 신화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깝다. 만일 유럽 대륙에서 건너온 초기 이민자들을 청교도라고 통칭한다면, 그들이 믿는 신앙의 핵심은 매우 세속적인 기독교 윤리에 가까운 성격을 띤 것이라고 할 수 있다.[iii] 청교도 정신은 새롭게 정착한 이주민들에게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규율화된 형태의 삶의 방식을 제공해 주는 일종의 종교 윤리의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으로 청교도 윤리는 미국 사회에 근대적 자본주의와 합리적 생활 방식을 뿌리내리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초창기 청교도 지도자인 존 윈스럽(John Winthrop)의 주장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그들의 신앙은 신대륙에 성스러운 나라를 건설할 선택된 민족으로 청교도 출신 이민자들에게 특권 의식을 주기도 했다. 이것이 미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 사상을 만든 기반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iv] 미국 사회와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 신조는 이민자들이 주도한 국가 형성 과정은 물론이고, 거대한 힘을 통해 팽창을 거듭한 패권 국가의 지위를 강화해 준 이념이기도 하다. 문제는 팽창 과정에서 늘 적을 양산해 왔다는 점이다. 이는 건국과 개척 과정에서 토착 원주민을 희생시킨 원리이기도 했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이슬람을 적대 세력으로 만들거나 인종에 기반한 차별 정책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결국, 청교도 정신으로부터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신화라는 어두운 단면이 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청교도 정신은 인종주의와 같이 무자비한 힘의 위계 서열로 차별을 정당화하기보다 보편적인 인간애에 기반한 것이었다. 기독교 신앙은 싸움과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힘의 숭배를 강조한 바 없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서한에서 기독교 정신의 핵심을 찾아볼 수 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로마서 12:14~16).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멸시와 죽음의 길을 간 예수의 생애는 우승열패의 정신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예수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힘을 포기하는 길이야말로 제자의 도리라고 가르친 바 있다(누가복음 9:23). 십자가를 짊어질 힘만 빼놓고 말이다.

서로 공감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기독교적 세계관의 이상적 모습이다.

메시아가 임하는 날의 모습을 전한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서도 이러한 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이사야 11:6~8).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 사도의 권면,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알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는 우승열패의 신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힘을 통한 우위로 성공과 승리를 쟁취하거나, 반대로 열등한 존재를 구별하여 차별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 공감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가장 부합한 이상적 모습이다.

사도행전을 통해 전하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은 서로 함께 통용하며 마음을 같이하는 나눔의 실천 공동체였다.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기독교 사상의 핵심은 한 몸을 이룬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밖에 없는 공감(共感)의 능력이다. 타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은 기독교적 사랑의 전제 조건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웃이라는 타자를 내 몸처럼 사랑하려면, 공감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리와 차별을 위한 인식이 아니라, 돌봄과 나눔을 위한 이해에 가깝다. 우리와 다른 타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지닌 동일한 존재로서 그들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관용과 포용으로 이끄는 힘을 공감은 가지고 있다. 공감은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인종주의와 같은 분리와 차별의 이념적 도구로 전락한 기독교적 가치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신학적 기반이라 할 것이다.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공감의 신학으로 (1)

권혁인 목사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LID Leadership Journal 2022


[i] 인종화된 특정 집단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주변화시켜서 상위 집단의 권력, 특권 및 지배 구도를 재생산하는 인종주의가 만연한 이유다. (Saloojee, A. “Social Inclusion, Anti-Racism and Democratic Citizenship.” Working Paper Series - Perspective on Social Inclusion. Toronto: Laidlaw Foundation. 2003, 신지원 외, 반인종차별 정책에 관한 연구: 미국, 캐나다, 호주 사례연구. IOM 이민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 No. 2013 – 05를 참고).

[ii] 현재의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첫 이민자들이 도착한 후 그들은 영국 국왕에게 서약문을 작성하고 복종할 것을 서명하였다. 그 핵심은 영국 왕에 충성하며 아메리카 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만인 평등의 법을 제정하여 복종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던 ‘언덕 위의 도시’(a city upon a hill)는 흑인 노예들의 노동과 토착 원주민의 강요된 양보에 의해 이루어진 불평등한 공동체였다.

[iii]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이를 증명한 바 있다. Max Weber, 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 Revised 1920 Edition, Oxford Univ. Press, 2011.

[iv] 차태서, “예외주의의 종언?: 트럼프 시대 미국패권의 타락한 영혼” 국제 지역연구 28권 3호 (2019 가을):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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