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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윤리와 사회 공동체

By Hyeoknam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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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특별한 대응적 관계 규정(창조자-피조물, 소유자-청지기)을 통해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요청받는 윤리적 삶이 있다. 그리스도인이고자 한다면 이에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능동적 당위’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성숙한 인격적 주체가 사회 공동체 가운데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1.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주체적 개별자인 인간

일반적으로 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거나 행해야 할 도리나 규범”을 일컫는 것으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며 비로소 그 본성을 완성할 수 있는 삶의 자리인 사회에 정초(定礎)해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윤리란 인간의 개별성과 사회성 두 가지 측면의 특성을 담지한다는 것이다. 즉 이 윤리라는 규정이 담지하는 내재성(內在性)은 인간은 자연에 있어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은 그 사회 속에서 윤리를 실현하는 ‘주체적 개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을 면밀히 살펴보자.

우선 인간은 그 본성으로부터 ‘사회적 존재’이기에 결단코 사회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사회를 형성하는 규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윤리적 존재자다. 그러므로 인간은 도덕적 선과 악을 행하고, 이를 성찰할 수 있는 존재론적 특성을 지닌다. 또한 인간은 윤리를 실현하는 ‘주체적 개인’이다. 만일 인간에게 주체성, 즉 그 자신에게 부여되는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도덕적 선과 악을 행하고, 이를 성찰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그 스스로 사회의 규범을 따를 것인지 혹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규범을 따를 것인지에 관하여 주체적으로 결단하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렇듯 인간의 도덕적 가치 판단은 항상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것과 주체적 자유를 지닌 개별적 존재라는 것이 전제된다.[i]

2. 종교와 윤리의 상호성

하지만 인간 존재는 윤리가 내포한 사회성과 개별성이라는 이 두 측면에서 ‘존재’와 ‘당위’의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만일 인간이 그 본성으로부터 이탈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한 채 오로지 그 자신의 존재 규정(자연적 본성)에 따라서 살아야만 한다면 인간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평가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간은 주어진 자연의 본성 이외에 그 어떠한 존재의 가능성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주체적 자유를 지닌 개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언제나 사회에서 그 규정 (혹은 규범) 대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그 규정대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 또한 지닌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존재와 함께 당위에 대한 요청이 제기되는 것이다.[ii]

그렇다면 이 당위의 규정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마땅히 그렇게 살아갈 것이 요청되는가? 혹자는 이 당위의 규정이 사회 공동체의 ‘합의’(consensus)에 의해 성립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일부분에서는 그들의 주장 또한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당위의 본질성은 단순히 사회 공동체의 합의란 형태로 규정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 살펴보자. ‘살인하면 안 된다’는 윤리 규범은 어떠한가? 이에 관하여서는 모든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살인하지 않기로 합의하고 있기에 지켜야 하는 준칙인가?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는 더 근원적인 인간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이해로부터 확립된다. 즉 ‘살인하면 안 된다’는 윤리 규범의 당위는 그 자체인 인간 존재의 근저(foundation)로부터 형성된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그 근간으로 하는 종교야말로 윤리 규범 형성에 있어 토대가 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유한한 인간 존재(피조물)와 그러한 인간의 근거가 되는 절대적 존재(창조자)와의 결합으로부터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종교와 윤리는 서로 맞닿아 있으며, 필연적으로 서로를 요구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은 모든 창조 세계의 관리와 보전을 그 목표로 한다.

3. 기독교적 인간 이해와 윤리적 요청

기독교는 인간을 단순히 인간 그 자체로서만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규정 속에서 이해를 시도한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현실에 참여하며 동시에 그 현실에 규정적으로 관계하는 초월적 존재이자 창조자인 하나님에 관한 이해로부터 인간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현실 세계의 창조자가 되시며, 동시에 인간의 창조자가 되신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가 된다는 사실은 결국,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자에 대한 의존성과 피조성이라는 한계에 노출됨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피조물들과 함께 피조물로서 상호 연대와 공속성(Zusammengehörigkeit)에 있으면서 이들을 관리하는 특별한 존재론적 지위를 획득한다.” 여기서 일컫는 “관리란 ‘소유’와 ‘지배’로부터 의도적으로 명확히 구별되는 성서적 개념으로서 청지기의 사명적 행위를 말한다. 청지기는 소유자 혹은 지배자와는 전적으로 다른 본래 존재 이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진다. 피조된 인간, 즉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창조의 목적을 향하며, 그 목적의 존재로서 관리의 책임이 지워져 있다.” 특히 인간에 관한 이러한 인식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서적 표상으로서 명시된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iii]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26a).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대응적 관계, 즉 계약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며, 그로부터 관리 혹은 돌봄의 책임이 맡겨진다. 앳킨슨(David Atkinson)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부여한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 문제”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이란 우리 인간들의 지위요 목적이며 선물이자 사명”이라고 설명한다.[iv]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다른 피조물에 대한 관리의 책임, 즉 사명은 모든 창조 세계의 관리와 보전을 그 목표”[v]로 한다. 또한 그 궁극적인 목적은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에 기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 목적과 사명을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대한 당위로서 응답이 요구된다.

4. 윤리적 응답: 당위로서의 사랑

창조주 하나님과의 특별한 대응적 관계를 통해 응답의 존재자로 세움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해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라는 상관성 속에서 설명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은혜로 부여받아 하나님의 동역자(Cooperator Gottes)가 되고, 그로 인하여 신앙 안에서 충만한 열매들을 맺도록 부름을 받았다. 이는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열매인 사랑을 통해서 맺는다.”[vi]라고 설명한다. 루터가 설명하는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근원인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시작된 그 사랑에 대한 대응적 응답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기쁨으로 타자된 이웃을 능동적으로 섬기게 된다.[vii] 결국 “그리스도인들은 절대적 타자인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존재(the loved)이기 때문에 실존적 삶의 관계자인 이웃(타자)을 사랑하는 존재(the lovers)가 되는 것”[viii]이다. 이에 대해 루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며(nicht in sich selbst), 그리스도 안에 그리고 이웃 안에 삽니다. 신앙을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in Christus durchden Glauben), 사랑을 통해서 이웃 속에(im Nachsten durch die Liebe) 삽니다. 신앙을 통해서 성도는 자신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는 다시금 스스로 사랑을 통하여 낮아져서, 항상 하나님 안에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ix]

이에 더하여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제한 없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마땅한 하나님의 요청에 따른 윤리적 응답이라고 주장한다. 웨슬리에게 있어 “상호 인격적인 관계에 서 있는 하나님 사랑이 이타적인 이웃 사랑이 생겨나고 실천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라면, 믿음 안에서 인식되고 체험된 하나님 사랑의 결과로서의 실천적 이웃 사랑 또한 필수적”[x]인 것이다.

웨슬리는 형식적인 주장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신의 실제적 삶을 통해 이러한 윤리적 응답의 삶을 실현했다. 우리는 더글러스 믹스(M. Douglas Meeks)의 기술을 통해 이러한 웨슬리의 삶을 확인할 수 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것은 단순히 그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었기에 웨슬리는 실제로 그들의 침상으로부터 질병에 걸려도 좋다 싶을 정도까지 뜻깊은 방법으로 그들과 생활을 나누었다.”[xi] 이와 같이 루터와 웨슬리가 인간 존재에 요청하고 있는 사랑은 타자를 섬기라고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 당위로서의 사회적 책임임을 재확인하고 있다.

5. 윤리적 실현과 수행의 장: 사회 공동체

결국 참 하나님과의 관계에 정초해 있는 인간은 응답의 책임자로서 세상을 위해, 세상 안에, 세상과 더불어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기 목적성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단지 하나의 사회 윤리를 가진 존재로서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윤리 그 자체로서 세상 한가운데 현존한다. 그리스도인이 사회 윤리로서 존재하는 까닭은 “신학적으로 진리는 궁극적으로 수행적(performative)이기 때문이다.”[xii]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명목상으로는 교리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시에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면서, 실제적으로는 진리의 실현과 수행인 이웃 사랑의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참되게 관계 맺어진 응답자로서의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형성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행위와 실천을 야기하는 강력한 동인으로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지적했듯이 “수행적 진리와 이해는 언제나 실제적 행동과 실천에 헌신하는 행위를 전제하고 동반한다.”[xiii] 이에 그리스도인 그 자신이 곧 사회 윤리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대응적 관계 규정(창조자-피조물, 소유자-청지기)을 통해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요청받는 윤리적 삶이 있다. 그리스도인이고자 한다면 이에 반드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능동적 당위’로서 하나님 앞에 세워진 성숙한 인격적 주체가 사회 공동체 가운데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권혁남 박사
협성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 (사회와 윤리) 교수
LID Leadership Journal 2020


[i] 松本長彦, “宗教と倫理,” 高知県高等公民科倫理部平成七年度, 1995年 12月.

[ii] Ibid.

[iii] 권혁남, “기독교 생명윤리에 관한 윤리적 판단의 원리,” 신학과 실천 49 (2016): 663-666.

[iv] David Atkinson, "Some Theological Perspectives on the Human Embryo" in Nigel M. de S. Cameron (ed.), Embryos and Ethics: The Warnock Report in Debate, (Edinburgh: Rutherford House Books 1987), 47.

[v] 권혁남, “자살문제와 기독교 생사관의 관계에 관한 규범윤리적 연구,” 인문사회 21 7/6 (2016): 143.

[vi] 주도홍, 『개혁교회사』, (서울: 도서출판 솔로몬, 1998), 331.

[vii] 김옥순, “디아코니아 관점에서 본 보편적 복지의 타당성에 관한 연구,” 신학과 실천 34 (2013): 419.

[viii] 이재하, “루터의 《요한 1서 주석》에 나타난 사랑의 신학,” 韓國敎會史學會誌 15 (2004): 219.

[ix] Martin Luther, D. Martin Luther's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abbr. WA), (Weimar: Verlag Hermann Böhlaus Nachfolger, 1883-1993), 7, 38.

[x] Manfred Marquardt, trans. John E. Steely and W. Stephen Gunter, John Wesley’s Social Ethics: Praxis and Principle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2), 107.

[xi] M. Douglas Meeks, ed. The Portion of the Poor: Good News to the Poor in the Wesleyan Tradition, (Nashville: Kingswood Books, 1995), 10.

[xii] 박우영, “도덕적 성찰과 실천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 연구,” 신학과 실천 28 (2011): 640.

[xiii]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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