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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열패의 신화에서 공감의 신학으로 (2)

BY HYOK IN KWON

Candles in Church Service 72px

2.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신화

아시아인의 대규모 이주는 흑인 노예 제도의 폐지와 함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루어졌다. 일명 “쿨리”(coolie)로 불리는 해외 계약 노동자를 통해 식민지 시대의 노동력 확보를 대체하는데, 아시아인은 순응적이면서도 효율성이 높다는 이유로 백인 고용주에게 안성맞춤 대안이 되었다. 그러나 노동 시장에서 아시아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백인 노동자들의 반발은 황화라는 편견을 넘어 폭력을 동원한 강제 추방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초창기 아시아인 남성으로 구성된 비숙련 노동 시장에서 아시아인은 축출되어 세탁이나 요리 같은 전통적 여성 노동 영역에 집중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백인 노동자에게 밀려나 공공의 노동 시장에서 남성성마저 상실한 채,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하는 보조 역할에 머물러야 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서 아시아인을 “동화가 불가능한 외국인”(Unassimilable Alien)으로 규정한 배제 정책이 주목을 받은 데는, 백인 우월주의를 재생산하고 자신들만의 강력한 인종 연대 의식을 확립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러한 자신감은 백인 중심의 서구 사회에 팽배한 인종에 관한 왜곡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뛰어난 철학자 헤겔조차 아시아인을 ‘영원한 아동’으로 규정할 만큼, 백인 중심 사고는 서구 사회에 깊이 내재한 관점이었다. 이러한 인식 체계를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우승열패의 신화”다. 근대 산업 사회가 백인 중심의 서구 사회에서 꽃을 피우면서, 경쟁에서의 우위와 성공은 공동체와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 바 있다. “인간 세상에서도, 생물계에서도 강자가 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라는 논리는 이를 뒷받침해 주는 종교적 신념이었다.[i]

맹신에 가까운 우승열패 신화를 명실상부한 보편적 세계관으로 둔갑시킨 일등 공신은 과학이었다. 종교적 신념에 과학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우승 신화가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다. 예를 들어,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ser)를 필두로 한 사회진화론자들은 약자 인종이 강자 인종에게 전멸당하는 자연도태 현상은 오히려 전체 공동체를 강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유리하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주장에 권위를 제공한 것이 바로 우생학(eugenics)과 같은 의학과 생물학 이론이었다. 진화론의 주창자, 다윈의 사촌이기도 한 골턴(Francis Galton)은 인류의 유전적 불평등을 공론화한 사람이다. 그는 백인 이외의 모든 유색 인종들을 ‘유전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규정했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열등한 인종을 공동체의 적으로 삼아 번식을 억제하고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극단적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이 극단적 주장이 국가와 특정 집단으로부터 실질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종학자인 대븐포트(Charles Davenport)의 “인종의 잡종화가 퇴락을 가져다준다”라는 주장이 1924년 미국의 인종주의적 이민법을 제정하는 과학적 증거로 사용된 것이 그 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이용하여 일부 인종이나 하위 계층 사람들에게 유전적인 이유를 들어 생식 기능을 빼앗는 불임 수술 법안을 만들 정도였다. 피부색 차이로 인간을 분류하여 우열 질서를 부여하는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버젓이 활개를 칠 수 있었던 배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에 따르면, 오직 백인만이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기준이 될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백인에 대한 인종적 규정이 명확했던 것도 아니었다. 육안으로 피부색을 분간하는 것만 가지고는 백인이라는 인종 정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코커시언”(Caucasian)을 백인으로 규정한 인종주의적 과학은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경되기 일쑤였다. 1922년 일본계 이민자인 타카오 오자와(Takao Ozawa)와 인도계 이민자인 바가트 싱 신드(Bhagat Singh Thind)의 시민권 신청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은 인종에 대한 규정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ii] 한마디로, 인종은 존재하는 범주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방증이다. 특수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의적인 기준으로 구성된 사회적 산물이 바로 인종이란 개념이다.[iii] 이것이 인종주의라는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인정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문제는 인종주의로 표출된 ‘우승열패의 신화’가 사회 모든 영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학자인 에두아르도 보닐라-실바는 모범적 소수자로서 성공 사례가 많은 아시아인과 일부 백인 혈통을 가진 히스패닉들을 “명예 백인”(honorary white)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iv] 명예 백인은 피부색만 가지고 규정할 수 없는 인종 개념이다. 우승 신화에 기반하여, 사회적 계층이라는 사다리 상층부를 차지한 이들을 가리키는 신종 범주에 가깝다. 다른 유색 인종과 차별이 되는 우수 인종으로서 일정 정도는 인정하면서도, 백인 주류 문화와는 동화되지 않은 구별된 존재로 보는 시각이다. 말하자면, 백인 우월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서 새롭게 자리매김한 인종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인종 정체성은 매우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백인 우월주의 체제를 재생산하기 위한 보조 역할을 넘어서는 순간, 효용 가치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팬데믹 기간 동안, 백인 우월주의 세력의 불만과 과잉 반응이 그 증거다. 최근 아시아계 인구의 증가 추세와 엘리트 공간에서의 놀라운 부상은 그동안 사회 상층부를 독점해 오던 백인들에게 경쟁의 위협 요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자기들만의 우승열패의 신화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19세기의 황화론이 재발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트럼프가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려는 폭도들에게 “행동하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것”이라 말한 것은, 백인 중심의 국가가 처한 위기감의 극단적인 표출이라 할 수 있다. 우승열패의 신화에 빠진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국가는 백인만의 나라이며, 이를 방해하는 모든 신념과 체제는 위대한 미국의 적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라는 구호는 우승열패의 신화를 감추기 위한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우승열패의 신화에서 공감의 신학으로 (3)

권혁인 목사
산타클라라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LID Leadership Journal 2022


[i] Reverend William Kirby, The Bridgewater Treatises, 1835, Vol. 1: 142. 박노자, “우승열패의 신화” 한겨레 신문사, 2005에서 재인용.

[ii] 대법원은 시민권을 요구한 타카오 오자와에게 피부는 희지만 과학적 분류상 “코커시언”이 아니라는 근거로 거부했다. 몇 달 후 대법원은 바가트 싱 신드에게 “코커시언”은 맞지만 피부가 갈색이라는 이유로 시민권 요청을 기각했다. (박성준, 인종주의 체제에서 아시안의 위치와 선택. 프레시안, 2021).

[iii] 김혜명, “흑인의 과학적 인종주의에 관한 고찰-보아스학파를 중심으로” 통합유럽연구 제9권 2집(통권 제17호, 2018), 원숙연, “인종주의의 다차원성과 영향력의 차별성” 행정논총 제50권 제4호, 2012.

[iv] Eduardo Bonilla-Silva, “From bi-racial to tri-racial: Towards a new system of racial stratification in the USA”, Ethnic and Racial Studies, Vol. 2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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