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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필수 아미노산 - 새벽예배

Stock sunrise over cross

By Daniel Young Choi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살고자 할 때 성도는 비로소 새벽을 깨운다. 날이 밝기도 전에 한적한 곳으로 나아 가사 하나님께 기도하셨던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로뎀나무 아래의 한 지친 영혼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은혜의 시간이 바로 새벽예배다. 한 교회에서 12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역의 시간을 마무리하면서 목회를 하는 동안 나에게 무엇이 가장 큰 힘이 되었을까? 한번 생각해본다. 단연코, 그것은 새벽예배였다.

내 힘과 의지로 할 수 있는 목회가 아니기에 더욱이 나는 새벽을 깨워야만 했다. 자기 뜻을 펼치는 자아실현이 목적이라면,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되지, 굳이 새벽예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거룩한 제사장들이기에, 하루의 삶을 시작하기 전, 새벽예배를 통하여 그분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이제 지루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벽예배의 시간을 통하여 목회자와 교회 리더들, 그리고 성도들이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비전을 확인하고 가정과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므로 하나님의 비전을 세워 가야만 한다.

1. 목회자는 새벽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상을 깨달아야 한다.

엘리 제사장이 사역하던 때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하여 영적으로 무감각한 시대였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사무엘상 3:1).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깨달으려면 영적 귀와 눈이 밝아야 하는데, 엘리는 어리석게도 영적 분별력을 상실하여 하나님의 이상을 깨닫지 못하는 지도자였다. 목회를 지식으로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목회는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철저히 깨지고 부서지고 낮아져서 하나님의 마른 막대기로 준비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을 붙여 주시는 것이 목회 같다. 목회자들이 처음에 가졌던 열정과 사명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교회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부흥, 발전해 갈 것이다. 하지만, 다짐과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쉽게 무너지고 만다. 사실, 열심히 하다 보니 지치고 맥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점을 나무라거나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은 바보 같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목회는 처음 시작부터 보완 장치를 가지고 시작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몸소 보여 주셨던 새벽예배(새벽기도)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배터리가 죽을랑 말랑할 때, 충전기에 스마트폰을 연결하여 재충전한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영적인 힘이 다 고갈될 때, 또는 고갈되기 전에 새벽예배를 통하여 영적인 재충전의 시간(Spiritual Recharging Moment)을 가져야 한다. 아울러, 목회자는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내면과 대면하여 서서 교회의 비전을 꿈꾸는 시간(Vision Dreaming Moment)을 새벽예배를 통하여 가져야만 한다. 깊은 묵상과 순종의 시간을 통하여 먼저 힘을 얻고 교회와 이 시대를 향하여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이상을 깨닫는 것이 바로 오늘의 목회자들이 붙잡아야 할 사명이다.

2. 교회 리더들이 새벽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영적인 전쟁터와도 같은 이 땅의 삶에서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교회의 리더들이 먼저 새벽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바로 세워지는 리더십 회복의 기회(Leadership Recovering Moment)를 가져야만 한다. 교회 리더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하며 자신들의 힘으로 교회를 섬긴다면 교회는 세속화되고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목회자가 아무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도, 리더들이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는 교회는 희망이 없다.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들이 회복돼야 한다. 교회 운영에 관한 행정적인 지식, 교회 치리에 필요한 교회법, 교회라는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세상의 경영 지식으로 가득 채워진 리더들이 득실거리는 교회는 시끄럽다. 물론, 이러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나, 그런 것들이 전부는 아니다. 교회 리더들의 제일가는 덕목은 바로 새벽을 깨우는 영성이다. 하나님과 만나는 광야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심어주신 소명을 확인하고 그분 앞에 철저히 엎드려질 때, 연약한 지체들을 붙들어주고 싸매 주는 여호수아 같은 영적인 리더십이 세워지게 될 것이다.

3. 교회 성도들이 새벽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회복돼야 한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인 성도들이 하나님께 속하지 않고 세상에 속해 산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산다. 이제 새벽예배는 목회자들만의 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인 제사장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성도가 누려야 할 특권이다. 이 새벽예배를 통해 우리가 주인 삼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의 전환 기회(Shift Adjusting Moment)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저질러놓은 일을 처리하시고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구원의 계획에 따라 일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우리의 통치자시다.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높고 크신 생각(이사야 55:8~9)을 여쭙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이제 잘못된 삶의 질서를 새벽예배를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늘 문제를 겪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울부짖고, 문제가 다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에 휩싸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무의미한 죄악의 삶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새벽예배를 통하여 삶의 방식을 전환하여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말씀을 준행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될 것이다.

4. 새벽예배 시간에 중보의 기도를 통하여 가정과 사회를 회복해야 한다.

오늘날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우선시되는 인본주의 세상이다. 지금 우리는 사사기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표현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가정의 존재가치가 이미 바닥을 쳤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어버린 지 오랜 지금, 이 땅의 가치관은 말할 수 없이 혼탁하다. 이 세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기도 밖에는 희망이 없음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다. 이 땅의 모든 성도가 새벽의 제단에서 무릎 꿇고 이 세대를 위해 기도의 등불을 밝힐 때이다. 롯의 가족들을 향했던 아브라함의 중보의 기도가 이 세대에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는 가정과 사회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 모든 성도가 새벽예배를 통해 중보의 기도 시간(Support Praying Moment)을 가져야만 한다. 이제 우리는 이런 거룩한 기도의 운동을 통해 무너졌던 기독교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거대한 인본주의 바벨탑을 무너뜨려야 한다. 21세기의 수많은 교만과 불순종의 풍조와 하나님 없는 신학의 오염의 물결 속에서 우리의 가정과 사회를 건져내어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예배의 제단으로 회복해야 한다.

5. 이제는 새벽예배를 통하여 교회의 비전이 세워져야 한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은 아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친히 주장하시고 운행하시는 곳이다. 선교, 부흥, 성령의 역사,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다. 새벽에 부르짖고 기도한다고 이런 역사가 이루어질까라고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그릇된 세상의 인본주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다. 교회의 비전은 하나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영성의 깊이와 비례한다.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자는 말이 아니라, 나를 내려놓고 성령님이 주관하시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기도의 능력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모두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를 통하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교회의 비전을 세우는 시간(Vision Building Moment)을 가져야 한다. 아멜렉과의 전쟁, 여리고성 전투, 135,000명의 미디안과 기드온의 300 용사의 싸움. 어찌 보면,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에 가능하고 말이 된다. 교회의 비전을 세우는 일은 큰 성전을 건축하는 것도 아니요, 사회가 깜짝 놀랄만한 업적을 이룩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만히 기도를 통하여 뭇 나라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교회와 성도를 통하여 그분이 보여 주시는 크고 놀라운 일을 순종하며 세워가는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구원의 역사에 쓰임 받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축복의 시작으로 여러분 모두를 초대한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마가복음 1:35).

November 2019 SLiNGstones
슬링스톤즈 - 목회 전략과 영적 통찰력을 담은 사역 아이디어
최영완 목사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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