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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의 기도

BY YOUNG BONG KIM

Stock hands praying over bible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너무도 많이 들어온 말이다. 영적 생명을 유지하고 키우는 데 있어서 기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며, 따라서 기도는 호흡처럼 늘 계속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데살로니가전서 5:17)라고 권면한다. 하지만 몇 시간 혹은 몇 분도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간헐적 기도’로 영적 생명을 연명하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영적 성장과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영적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 이렇게 기도해 보라.

나 자신의 문제로 인해 기도의 자리를 찾았다가 하나님의 영광에 눈 뜨고 그 영광에 사로잡히는 것이 바른 기도가 가는 방향이다.

1. 하나님과의 선의를 믿어라.

우리 대다수가 배워 익힌 기도는 ‘요구의 기도’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기도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도에서 하나님은 채무자가 되고 나는 채권자가 된다. 혹은 나는 주문자가 되고 하나님은 주문을 받는 분이 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무엇보다 자애로운 아버지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를 믿으라고 하셨다(마태복음 6:8).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달리 표현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사랑할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나를 사랑하신다.”

우리의 기도가 요구의 기도에 그치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믿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요구나 주문 혹은 투쟁이 아니라 사랑의 사귐으로 바뀌어야 한다.

2. 기도의 목적을 바꾸라.

‘요구의 기도’에 익숙한 우리는 기도의 목적을 ‘응답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하나님이 주실 선물에 더 관심이 있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안다면 그리고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안다면 하나님이 주실 선물보다 하나님 자신에게 더 관심을 두어야 마땅하다. 부모를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부모 자신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할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하나님의 대지 안에 깊이 심기는 것이다(시편 92:13). 하나님을 ‘존재의 근거’라고 했던 폴 틸리히의 표현을 빌린다면, 우리의 존재를 그분 안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럴 때 바울 사도가 말했던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빌립보서 4:7)가 우리 존재 안에 스며든다.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다(로마서 14:17). 우리의 존재가 그렇게 하나님 안에 자리를 잡으면, 상황은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

3. 기도의 태도를 바꾸라.

요구를 위한 기도는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다. 전능의 하나님 앞에서 무능의 인간이 무엇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기도 방식이라면 우리의 기도는 중노동이 된다. 같은 요구 조건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해 본 사람은 안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기도하려다가 지쳐 버린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이 가장 괴롭다.

기도의 목적을 사귐으로 바꾸면 기도가 즐거워진다. 사귐은 두 사람의 인격적인 교류를 말한다. 지속성이 없으면 그것은 사귐이 아니라 만남이다. 또한 사귐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한다. 함께 있으면 헤어지기 싫고, 떨어져 있으면 다시 만나고 싶은 관계 안에서만 사귐은 일어난다. 그렇기에 사귐은 그것 자체로 즐겁고 행복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 사귐은 또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일어난다. 대화도, 노는 것도, 같이 먹는 것도 사귐이다.

4. 기도의 방식을 바꾸라.

기도를 사귐으로 생각하면 기도의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양과 감사, 믿음의 고백 같은 것이 그 예다. 나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에 더하여 이런 기도를 올릴 때 내 존재는 하나님의 정원 안에 깊이 뿌리 내리는 것을 느낀다. 기도의 초점을 자신과 자신의 문제로부터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 보라. 나의 필요와 요구로부터 하나님의 섭리와 그분의 뜻으로 관심을 바꾸어 보라. 그것이 ‘주기도’를 통해 배우는 기도의 원리다. 나 자신의 문제로 인해 기도의 자리를 찾았다가 하나님의 영광에 눈 뜨고 그 영광에 사로잡히는 것이 바른 기도가 가는 방향이다.

기도를 통해 “무엇을 했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실적주의’가 우리의 기도를 껍데기로 만든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어졌느냐에 있다. 그렇기에 기도가 깊어질수록 묵상과 침묵이 중요해진다. 묵상은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는 것이고, 침묵은 하나님 앞에서 “멍 때리는 것”이고, 마르바 던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시간 낭비”다.

5. 일상생활을 기도로 만들라.

기도 생활은 일상생활을 기도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매일 충분한 시간을 성별하여 기도하는 것은 영적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나머지 시간을 기도의 상태에서 살아가기 위한 것이다. 로렌스 형제가 프라이팬에 계란을 부칠 때나 사제들의 옷을 다림질할 때도 하나님을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온종일 모든 일을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행하기 위함이다. 잠자리에 들 때도 “하나님 안으로” 잠드는 것(We sleep into God)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 마커스 보그의 표현대로 마침내 “하나님 안으로” 죽게 된다(We die into God).

이것을 로렌스 형제는 ‘Practicing the Presence of God’이라고 했다. 이것을 우리 말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이라고 번역했는데, 오역에 가깝다. 제대로 번역하자면 ‘하나님의 임재를 살기’라고 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성별하여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는’ 것이고, 기도 후에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사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고린도후서 2:17)라고 말한 것처럼,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모든 시간은 구속되고 성화된다(redeemed and sanctified).

사귐의 기도는 특별한 기도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배워 익힌 기도 방식을 수정하라는 말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분 앞에서 우리 존재는 어떠한지, 왜 그분 앞에 서야 하는지, 왜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도를 통해 무엇을 구하고 기대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 생각에 맞추어 기도 방식을 수정하라는 뜻이다. 그렇게 기도할 때 그것은 우리의 영적인 호흡이 되어 영혼을 살아나게 하고 전 존재를 변화시킬 것이다.

김영봉 목사 [email protected]
와싱톤사귐의교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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