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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초점 어떤 방향에 맞추어야 하는가?

By Sung Il Lee

Stock man reading bible in woods

잠시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전에 섬기던 교회의 장로님과 더불어 어느 목사님을 만났다. 그 목사님은 4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하신 분인데, 자신의 목회 경험을 종합하면 “사람은 안 변하더라”는 것이었다고 했다. 나를 포함해 모든 목회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씨름해왔고, 실망과 낙심을 반복하면서 ‘마침내는 변화 시켜 주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맹진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다. 십여 년 전에 거듭난 순진한 양 같던 성도가 양의 탈을 쓴 이리 같은 성도로 변한 현실이 우리를 혼동케 한다. 심지어는 변화된 줄 알았던 나 자신도 변화되지 않은 현실 앞에서 그야말로 철저하게 낙망할 뿐이다. ‘변하지 않은 자신과 성도들’로 인해 실패한 목사로 남지 않으려면 앞으로의 목회 어떤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지, 어떤 제자를 양육해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주님이 자신의 교회에서 주인 되시는 그날이 다시 오기를 기도한다.

1. 성경을 내가 읽지 말고 성경이 내 자신을 읽게 하라.

성도들에게 성경을 많이 읽게 하고 심지어 성경을 여러 번 쓰게 하는 교회적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인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몇 번 읽었네. 몇 번 썼네” 하고 더 교만해질 뿐이다. 바리새인화를 촉진할 뿐이다. 왜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일까? “내가” 성경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의도적으로 성경을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간을 내야 하고 성경을 두 손으로 붙들고 읽어야 한다. 주제도 파악하고, 말씀을 주신 주님의 뜻도 파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은혜도 받고 감동도 받지만, 문제는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데 문제가 있다. 왜 그럴까? 성경을 내가 읽고 마쳤기 때문이다. 비록 처음에는 성경을 “내”가 읽기 시작했어도,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붙들고 성경을 통하여 “내” 깊은 심령을 읽어가는 과정이 따라야 한다. 너무 많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는 과정 없이 성경을 덮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성경을 읽은 사람은 그 지식이 그를 교만하게 만들며 넘어지게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 빚어주시는 변화를 반드시 경험하면서, 예수님의 겸손하고 온유한 심령을 받아 정말 변화되기 시작한다.

2. 회개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심을 복음으로 새롭게 조명하라.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들은 말씀으로 산다. 성경의 원어 의미보다 회개(悔改)의 한문식 표현이 그동안 나의 변화를 철저하게 막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갑자기 유교적 회개 개념이 나의 변화와 성숙을 가로막았음을 알게 되었다. “회개”(悔改)라는 말은 ‘죄스러운 생활 태도를 뉘우치고, 고치고, 하나님께 돌아간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한문이 말하는 그런 “회개”가 가능할까에 대해 오랫동안 가졌던 의구심을 한꺼번에 날려 주시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그날 경험하게 되었다. “정말 우리가 스스로 뉘우치고 고쳐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노력으로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필요가 없었을 것 아닌가? 그러면 예수님이 말하는 회개, 성경이 말하는 회개는 어떤 것일까?”

성령님은 나를 계속되는 질문 앞에 세웠다. 회개란 ‘메타노이아’(metanoia)라는 말로 “전향, 방향을 바꿈”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회개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게 했다. 많은 심령부흥성회와 통성기도 시간을 가졌었지만, 변화(metanoia)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은 이유는 “나”였다. 하나님이 내 삶에서 변화를 시작했지만,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스스로 변화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임이 분명하게 보였다. 내가 주체가 되면 잠깐 돌이키는 듯하다가 다시 내가 주인이었던 그 옛길을 다시 가게 된다. 변화란 자동차의 드라이버가 바뀌는 것과 같다. 내가 운전하면서 바뀌지 않았던 나의 인생의 운전석에 나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이 운전하실 때 진정으로 변화가 된다. 회개는 나의 주인 됨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인생을 새롭게 빚으시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회심이고 회개이다. 내가 나를 고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복음을 듣게 되면, 복음을 듣는 것 자체가 죄인을 찾아오신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다. 회개는 예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내주하면서, 나를 다스리시고, 나를 고치시는 것이다. 그분이 내 안에서 나를 바꾸시고, 나를 통해 말씀하시고, 일하실 때만 회개의 열매가 맺힌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그의 사랑과 은혜를 나를 통해 흘러나가게 하시는 것이 성령의 열매이며 예수의 형상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가 되어야 한다.

3. 자책 인생이 아니라 주책 인생임을 받아들이게 하라.

내 삶을 되돌아보니, 책임질 수 없으면서도 내 인생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고 살았던 자책(self-responsible) 인생과 주님이 책임져 주심을 온전하게 믿게 된 주책(Lord’s responsible) 인생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었다. 내 뜻대로 안 되면 스스로 자책하는(blame oneself) 인생과 목회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주님이 나의 인생을 책임져 주심이 믿어지면서 사람들 보기에 주책스럽게 여겨지는(without one’s own thought or position) 인생이 성경이 말하는 인생임이 믿어졌다. 그렇다. 세상에서는 자책 인생을 사는 사람을 ‘옳고 바른’ 사람으로 생각한다. 교회도 그런 사람이 ‘착하고 바른’ 성도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 성도를 만들기 위해 집사, 권사, 장로, 사역자 등으로 모델화시킨다. 다른 말로 종교적으로 자기 의라는 바벨탑을 쌓아가도록 부추기는 세속적 교회 문화를 성경적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이런 문화가 예전에 거듭난 양과 같은 성도를 바리새인 같은 이리로 변질시킨다.

성경이 말하는 회개란 “자신의 힘과 노력과 지혜로는 내 인생을 고칠 수 없음을 알기에, 내 인생의 주인 노릇 하기를 그만하고, ‘주님, 이제부터 나의 인생의 주인 되어 주시옵소서’ 하고 엎드리는 것”을 말한다. 성경적 회개란 자신의 생명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으로 살고자 하여, 자신의 삶 속에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초청하는 것이다. 자기 생명으로 사는 것이 너무 싫어서, 자기를 십자가의 죽음에 넘겨 버리고 예수로 사는 것이 진짜 회개다. 여기에 이르는 사람은 정말 주님의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대다수 자책 인생을 사는 바리새인화된 성도들은 회개는 남의 일로 생각하고 자신들에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깨끗하고 바르고 흠이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칭찬하고 존경하는 면모를 가진 자들이다. 자신들도 깨끗하고 의롭고 선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의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동시에 자신들은 하나님의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스스로 속인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특성임을 모른다.

이들이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 깨끗하고 진실하게 살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전에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리스도가 자신들을 위해서는 십자가 지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완악하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도덕적인 범주에서 생각하는 개념과는 아주 다른 의미다. 이들은 극심한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무리 들어도 깨달을 수 없고, 많이 보아도 알 수 없다. 그들의 인생을 책임지실 주님을 마음에 받아들이지는 않는, 자기 의로움에 붙들려 있기 때문이다.

4.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주님이 새 피조물로 빚을 수 있음을 믿게 하라.

아내가 새벽마다 “주님, 이 죽일 죄인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몇 년 동안 부르짖었다. 나는 아내가 나 몰래 큰 죄를 지은 모양이라고 착각했었다. 어느 날 작정하고 “내가 다 용서할 테니 말해봐”라고 심각한 얼굴로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죄악 덩어리임을 깊이 알았기에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자기 의에 붙들린 바리새인의 삶을 살고 있었기에, 아내의 절규하는 회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고난을 통하여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의미가 조명되면서, “주님, 내가 죽을 죄인입니다”라고 아내가 고백하며 처절하게 몸부림쳤던 이유가 내게도 보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란 죄를 내가 뉘우치고, 내가 나를 고치고, 또 나를 이리 깁고 저리 기워가면서 수선하는 것이 아니다. 자책 인생을 끝내 주실 주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내 안에서 아담의 후손 되었던 나를 자신의 십자가의 죽음에 포함해 주신다.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주신다. 내가 주인 됨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를 십자가의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내 속에서 나를 다시 살리신다.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빚으신다. 그렇다. 지금껏 주님이 새로운 창조의 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던 십자가의 원수가 나였음을 보았던 것이다.

5.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내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저녁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빵(만나)을 먹었다. 하나님은 저녁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을 때마다 이집트 바로의 속박에서 구속받았음을 상기해 주기를 원했다. 고기를 먹을 때마다 어린 양의 죽음으로 그들이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셨다. 우리도 저녁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의 보혈로 사탄의 속박에서 구원받은 감격 속에 잠이 들어야 한다. 다른 말로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붙들고 잠을 자야 한다. 그리고 아침에 떡(빵)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말씀은 우리 입에서는 아주 달지만, 뱃속에서는 쓰다. 먹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고생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는 자들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셨다.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순종의 삶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힘과 노력으로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것이 교만한 삶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핵심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게 한다. 신약의 핵심은 우리는 못 하지만 우리 속에 성령으로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하게 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였는데 바로 가장 복음적인 고백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순종의 삶을 살았기에 나는 무익한 종이라는 겸손한 고백이 나오는 것이다. 겸손과 온유하심이 예수님의 본성이었던 것처럼, 성령으로 사는 사람이 이렇다.

주님이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일하실 때만이 회개의 열매가 우리 속에서 주님의 일하심의 결과로 맺혀진다. 자기의 의로움이 죽고 주님의 의로움을 입게 된다. 하나님처럼 높아진 자아가 죽어 주님처럼 낮아지는 성육신의 삶을 산다. 나보다 의롭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웃게 하던 자기의 의의 바벨탑이 무너지고 오직 주님만을 자랑한다. 내로남불식의 정의를 주장하던 사람이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방법만을 주장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방법과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 자존심이 상하면 교회를 뒤집던 사람이 자존심을 버리고 한 영혼의 구원에 매진한다. 다른 사람을 주장하고 교회를 휘두르던 사람이 남에게 겸손히 이끌림 받은 것을 기뻐하게 된다. 오늘날 교회의 혼돈은 회개의 열매가 없는 바리새인화된 성도들이 자신과 교회의 주인 노릇 하면서 진짜 주인이신 주님을 교회 밖으로 쫓아낸 결과다. 이제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주님이 자신의 교회에서 주인 되시는 그날이 다시 오기를 기도한다.

이성일 목사 [email protected]
GBGM 선교사, Mission Practitioner in Residence, Candler School of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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