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책 읽기
By Yoseb Jeon

“목회자의 지도력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온갖 인간사와 삼라만상을 말씀으로 꿰뚫는 깊은 영성과, 사람과 자연의 슬픔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에서 나온다.”
시작하며
20세기 위대한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는 "우리는 자신을 위해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주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목회자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목회자에게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독서에 대한 첨언이다. 독서는 목회자의 설교와 목회를 돕는 중요한 공부의 도구다. 그러나 그에 그치지 않는다. 목회자는 신앙 공동체 속에서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삶의 방향을 돕는 사명을 지닌다. 따라서 책을 읽는 일은 목회자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실천이 된다.
특히 요즘같이 바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와 신앙인들이 당면한 여러 도전을 생각할 때 목회자의 독서는 더욱 중요하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신학적 사유를 확장하며, 시대의 변화 속에서 복음이 어떻게 구현될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을 넘어, 목회자 사고의 폭을 넓히고 영성을 깊게 하는 데 큰 유익이 있다. 무엇보다 하늘의 소리를 듣고, 땅에 풀어내는 설교자들이 자신이 처한 녹록지 않은 목회 현실 가운데서도 자신의 소명을 신실하게 붙들고 삶을 단단하게 빚어가는데 독서가 주는 큰 유익이 있다.
책을 읽는 일은 목회자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실용적인 책 읽기, 자기 계발로서의 책 읽기, 성공을 위한 책 읽기 너머 목회자가 소명을 붙들고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한 책 읽기에 대해 몇 가지 톺아보려고 한다.
1. 넓은 독서: 손 가는 대로 잡아 읽으라.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꾸준한 독서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독서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어렵고 딱딱한 책을 붙잡을 필요는 없다. 손에 잡히는 대로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보자. 자신의 전공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폭넓은 분야의 책을 읽도록 하자. 폭넓은 독서는 설교와 글을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편협한 사고를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부 목회자들은 "성경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지속적으로 다양한 책을 통해 새롭게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국 총리 디즈레일리는 “단 한 권의 책밖에 읽은 적이 없는 인간을 경계하라”라고 했다. 목회자가 귀 기울여야 할 말이다.
또한, 목회자가 독서를 통해 인문 사회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자본주의, 소비문화, 인종 차별, 생태 문제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관한 책을 접하며 신앙과 삶의 접점을 고민하자. 결혼, 출산, 육아, 노년 같은 인생의 다양한 시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지혜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공부도, 독서도 결국 삶을 살아내는 데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폭넓은 독서를 위해 서평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좋다. 모든 책을 정독할 수는 없기 때문에 서평을 이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제대로 쓰인 서평은 사상계와 지성계의 흐름을 헤아릴 수 있게 하며, 좋은 책을 구분할 수 있게 하며, 책의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돕는다. 각 출판사 및 온라인 서점에서도 양질의 서평을 접할 수 있고, 특히 한겨레 신문의 '책과 생각' 섹션에서는 최신 도서에 대한 서평과 기사를 정기적으로 게재하고 있고, 뉴욕타임스에서 제공하는 서평 섹션도 정기적으로 참고하도록 하자.
2. 깊은 독서: 반복해서 읽으라.
폭넓은 독서를 통해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넓은 독서와 동시에 반복해서 다시 읽기를 병행해야 한다. 신앙의 위인들과 탁월한 저서의 저자들은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으뜸 가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을 더 크게 쳤다.
책을 읽는 방식은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독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정보의 홍수와 제한된 시간 속에 더 많은 책과 정보를 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서, 양서 한 권을 진득하게 붙들지 못하고 있다. 야마무라 오사무는 “천천히 읽기를 권함”이란 책에서 읽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읽어야 함을 강조한다. 느리지만 완전히 소화해서 내 피와 살이 되게 하는 책 읽기는 천천히, 반복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찰스 스펄젼(Charles Spurgeon)은 “철저하게 읽어라. 몸에 흠뻑 밸 때까지 그 안에서 찾아라. 읽고 또 읽어 되씹어서 소화해 버려라. 바로 여러분의 살이 되고 피가 되게 하라. 좋은 책은 여러 번 독파하고 주를 달고 분석해 놓아라”라고 조언했다. 목회자도 무작정 새로운 책을 계속 읽기보다, 어느 순간에는 인생 책 50~100권을 선정해 반복해서 읽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은 쉽지 않지만, 우리의 삶과 목회를 지탱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3. 지성과 감성을 균형 있게 길러라.
지식과 정보를 주는 책만 읽지 말고, 감성의 습도를 유지해 주는 독서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와 수필집을 읽자. 생성형 AI가 정보를 능숙하게 제공하는 시대지만, 목회자의 지도력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온갖 인간사와 삼라만상을 말씀으로 꿰뚫는 깊은 영성과, 사람과 자연의 슬픔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에서 나온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것이 목회자들에게 유익하다. 목사의 삶과 주된 소명은 특정한 장소에서 개별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이야기를 선포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이야기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깨닫도록 돕는 것이다. 그 부르심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 있어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을 교리로 재단하지 않고 인간의 희로애락에 신이 현존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 되는데, 소설만큼 좋은 책은 없다.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 소설을 읽고 좋은 목사이기 전에 자신을 바르게 성찰할 줄 아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목회자들이 도저히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을 시간이 없다면, 넷플릭스에 있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라도 부지런히 들여다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4.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라.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한 달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만다. 단 몇 줄이라도 기억해 놓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란 생각이 들어 허망하다. 이럴 땐, 다산(茶山) 정약용이 말한 '질서(疾書)'와 '초서(抄書)'를 기억하며 책을 읽어보자.
질서(疾書)는 책을 읽다가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 적어 가며 읽는 것을 말한다. 즉 메모하며 책을 읽는 방법이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때면 메모지를 갖추어 두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 재빨리 적어야 한다.
초서(抄書)란 책을 읽다가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이를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독서법이다. 책을 한 권 마무리하면 밑줄을 긋거나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타이핑해서 모아두자. 뛰어난 통찰이나 표현을 담은 문장, 나중에 인용하고 싶은 문장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그렇게 책 별로 모인 구절을 파일로 만들어서 모아두고 거기에 자기 생각도 첨언하라.
그런 과정에서 사고가 종합적으로 발달할 뿐만 아니라, 결국 많은 경우 독서는 글쓰기로 빛을 발하게 되는데, 이렇게 모아둔 문장은 목회자의 설교나 글쓰기에 귀중한 밑글이 된다.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놓으면 일종의 보물창고가 되는 셈이다. 글은 바로 이 보물창고에서 나온다.
5. 독서 공동체에 속하라.
성도들과 신앙을 논할 때 결론은 공동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독서도 그렇다. 독서는 혼자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공동체 속에서 더 깊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주위에 책 읽는 친구나 선후배, 멘토가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책을 훨씬 더 가까이하는 걸 볼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잉클링스(Inklings)다. 20세기 대표적인 기독교 문학 모임이었던 잉클링스는 C.S. 루이스, J.R.R. 톨킨 등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와 작가들이 모여 형성한 독서 공동체였다. 이들은 함께 책을 읽고, 자신이 쓴 원고를 낭독하며 토론했다. 단순한 독서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사상과 신앙을 더욱 깊이 있게 세워가는 장이 되었으며,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 같은 작품이 탄생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필자 역시 개인적으로 독서와 글쓰기 공동체에 속해서 책을 읽고, 구성원들과 서평을 공유하면서 독서가 깊어지는 경험을 했다. 지금도 선배, 동료 목회자들과 독서 모임을 통해 교학상장(敎學相長)하고 있다. 책을 함께 읽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설교와 목회에도 새로운 영감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독서 공동체는 단순한 책 모임을 넘어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공간이 된다. 꾸준히 책을 읽고 대화하는 관계는 신앙과 목회에 긴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혼자서는 책을 읽다 포기하기 쉽지만, 함께 읽으면 독서도 신앙도 더 깊고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나가며
프랑스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Antonin-Gilbert Sertillanges)는 그의 책 “공부하는 삶”(The Intellectual Life)”에서 공부하는 삶은 신적 소명이며 “모든 사람은 공부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공부하는 것, 지성인이 된다는 것은 성공하거나 필요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신성한 소명을 따르는 길이며 마치 수도사처럼 오랜 시간 침묵 속에서 수행하며 한 인간으로서 전인격적으로 성숙함에 이르는 여정이다.
목회자의 독서도 공부도 결국 그런 여정의 일부가 아닐까? 독서는 목회자가 설교와 사역을 위한 도구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람과 세상을 넓게 바라보며, 목회자의 내면을 단단하게 빚어가는 데 상당 부분 유익을 준다고 믿는다. 김기석 목사는 공부란 부지런히 ‘두텁게 쌓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두텁게 쌓는 일은 쉽지 않다. 바쁜 일정 속에서 책을 펼치는 일이 고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꾸준히 읽고, 쓰고,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목회자가 자라나고, 깊어지고 삶의 성숙함과 풍성함을 누리게 되길 소망한다.
전요셉 목사
First UMC of Freehold, 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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