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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사회와 종교

By Walter C. Chun

Stock hands outstretched overlooking water

인류가 지구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미지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지혜가 늘어 도구를 개발하면서, 의식주에 편리한 방편을 찾아 거주에 적당한 기온과 지역을 찾기에 이르렀다. 국가 안에 국한하는 이주를 넘어서는 이민에는 새로운 지역의 환경과 언어에 적응하고 새로운 생활 방편을 개척하는데 많은 고난과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여기에는 풍요한 결실이 기다리고 있다.

학자들은 종교를 정의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한다. 종교를 설명하려는 개념부터 실제로 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종교가 사람을 인도하고 영감을 주는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종교를 지적으로 설명하고 인간의 의도, 감정, 행위를 강조한다. 최근의 학설로는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1926~2006)의 해석학적인 견지로, 모든 사회 과학에서도 폭넓게 받아들이는 접근 방법이다. 이 글에서는 종교를 구체적으로 기독교로 보고, 이민 사회는 미국의 한인 이민의 경험을 들어 해석해 보는 가운데 종교가 이민의 과정에 공헌하는 특유한 역할을 살펴보기로 한다.

종교를 이론화하는 신학은 인간의 곤경에서 시작하여 믿음을 해석하면서 동기를 유발하고 의미와 보람을 찾아 안위와 도전으로 이에 합당한 행동을 촉진한다.

이민의 나라 미국

미국은 빙하기에 베링해를 건너온 유목민 탐구자들인 인디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의 조상이 다른 지역에서 왔기 때문에 이민의 나라이다. 획기적인 계기는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대서양을 건너 1492년 10월 12일 카리브해 지역의 작은 섬에 도착하여 예상치 않은 미대륙 발견 사건으로 이것은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럽에서는 한정된 국가의 영토를 넘어서 새로운 지역에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식민지 시대를 열게 된다. 유럽 정착인들이 땅을 확보하려는 투쟁에서 수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전쟁과 강제 노동과 병으로 죽어갔고 주변으로 물러나게 된다. 점차로 이 광대한 땅은 설립자들의 많은 갈등과 이상과 결단을 토대로 하여 “자유와 약속의 땅”으로 인류 사회에 크게 공헌하는 이민의 건설적인 성취를 이루게 된다.

새로운 세계가 사람들을 “끌어당긴”(pull) 매력에는 유럽 사회가 가난으로 시달리던 경제적인 여건과 사회적으로는 학대와 고난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창조의 공간을 제공한 것으로 여기에는 종교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으로 자리 잡은 데 있다. 미국의 설립자들이 1791년 예배의 자유를 수정 헌법 제1조에 명시하여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천명하여 이 보장이 수많은 이민자를 유치했다. 21세기 초까지 2천여 종의 다른 종교로, 지구상에 종교적으로 가장 다양한 국가로 다양성(diversity)을 포용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원치 않는 이민자로 아프리카에서 팔려 온 흑인 노예들이 선택한 종교는 주인들과 같은 기독교였다. 그러나 소리 지르고 열을 올리는 “사회 참여”의 오순절식(Pentecostal) 흑인 교회는 사회 센터(social center)로 사회 진출의 발사대가 된다. 칼빈의 영향을 받아 “정화한다”라는 뜻을 지닌 영국교회의 분리파 청교도(Puritan)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약속의 땅으로 1621년에 Plymouth에 상륙하여 추수 감사를 시작한다. 로욜라(Ignatius Loyola)의 예수회(the Society of Jesus or Jesuits), 재세레파교도(Anabaptists), 후터파교도(Hutterites), 메노파교도(Mennonites), 아미쉬파교도(Amish)는 지금도 공동 집단을 이루고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몰몬교(Mormon)로 개종하여 왔고, 1800년부터 1924년 사이 천주교인들과 유대교인들이 대량으로 왔다. 모라비안교도(Moravian), 티베트의 불교와 이슬람교도들까지 와서 자기 문화와 종교를 지니는 공동체를 이룬다.

정치적인 자유 보장은 18세기에 유례가 없던 것으로, 대의 정치로 언론과 집회의 기본권 보장으로, 미국 헌법의 기조는 근본적으로 통치받는 사람들의 동의가 정부의 유일한 근거로, 이것은 계몽 운동의 철학에 다른 종교를 허용함으로 아이디어의 “자유 시장”이 최선의 효과라는 언론과 집회를 보장한 데 있다. 예술 면에서 소련의 Sergei Rachmaninoff와 Igor Stravinski, 이탈리아의 Arturo Toscani와 사회면에서 영국의 Andrew Carnegie와 헝가리의 Joseph Pulitzer 등의 특출한 공헌으로 미국의 수준이 급상승하게 된다.

동양인으로는 중국인들이 처음으로 1849년 캘리포니아주의 금광 개발 붐에 들어왔다. 그러나 1870년에 아시아인들에게 시민권을 금했고,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이 선포되고 1880년대 일본인 배제가 있었다. 중국인들은 차이나타운(Chinatown)을 조성하여 자급자족을 이루었다. 초기의 개방 이민 시기에 언어, 문화, 풍습, 종교가 다르고, 특히 가난하고 기술이 없는 이민자들이 닥치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해서 미국의 임금과 생활 수준을 낮추고 빈부의 차를 조성한다고 생각해서 미국의 노동자들이 반 이민정책과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웠고 KKK(Ku Klux Klan)가 생겼다.

한인 이민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

이민의 동기에 모국에서 “밀어낸”(push) 배경을 한인들의 역사적인 상황에서 살펴보자. 1875년부터 시작한 일본의 지배욕으로 국운이 기울어지는 속에서, 20세기 후반까지도 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독재로 시대적인 선도에서 벗어나 역행하는 부조리 속에서 역사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고민하는 가운데 새로운 돌파구로 찾아낸 것이 이민의 길이다. 이들은 안정을 구하고 자유와 평화를 찾아 보장된 삶을 추구하기에 이르렀고, 특히 자녀들의 교육과 기회를 추구하는 깊은 열망이 담겨있었다.

한인 집단 이민은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101명이 사탕수수밭의 첫 이민자로 들어오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최초로 하와이에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가 세워지고, 1940년 3월 11일 미주 본토 로스앤젤레스에도 감리교회가 세워졌다. 초창기에 감리교회가 많이 세워진 것은 감리교단은 별도로 이민교회를 지원한 데 반해 장로교단은 같이 예배드리자는 주장으로 이민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데 있다. 1924년 동양인 배제법으로 한인 이민을 배제했다. 그러나 1965년부터 국가별 이민 할당제 폐지로 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들어왔고 이민 교회는 이민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독립을 되찾으려는 대망 속에서 국가를 되찾는 애국적인 심정으로 모국 회복 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다른 타향살이에서 겪는 언어 장벽의 어려움과 단일 민족 사회에서 다인종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인종차별의 혹독한 체험을 했다. 인종차별은 힘으로 억압을 강행하는 것으로 편견에 권력이 깃든다. 이 차별은 불공평으로 가난을 일으키고 주택과 소송 절차에서 편견으로 삶의 질을 저하한다. 예를 들면, 시카고 지역의 폭력과 살인은 일자리가 없어 가난으로 자포자기하는 사회악이다. 사회운동가 Jim Wallis는 “대량학살과 노예화”로 시작한 인종차별과 백인 특권을 “미국의 원죄” 곧 믿음의 문제로 “정의가 더욱 가능하도록... 새로운 미국으로 건너가자”라고 촉구한다.[i]

돌이켜 보건대 미국인들이 자체 내에 침체하여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부정의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개신교회는 믿음을 의지하고 새로운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온 한인 이민자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흑인들의 강력한 민권 운동으로 1964년 민권법(Civil Rights Act)은 소수 민족의 민권을 보장했고, 1956년 선거법(Voting Rights)은 소수 민족들의 정치 참여를 보장해 주었다. 이제는 백인들의 우월과 권력의 독점을 다소 양보하는 개화된 과정에서 인종차별이 다소 완화되어 한인들도 그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인종에 대한 평등의 정의는 아직도 요원하지만, 오바마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많은 변화를 가져왔기에 앞으로 한인 자손 가운데도 대통령이 나오리라는 희망이 있다.

미국 이민 과정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미국화”(Americanization)를, 그 후로는 “동화”(assimilation)가 주동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샐린스(Peter Salins)는 이 자발적인 과정에 세 가지 전제로 (1) 언어적으로 쉬운 영어를 국가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2) 미국인의 동일성을 수락하고 자유를 존중하는 민주적이고 인류 평등주의의 원칙을 믿는 근대성과 발전을 추구하고, (3) 자제하고 열심히 일하며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개신교의 윤리대로 삶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표시인 풍성한 소출을 얻는다고 분석했다.[ii] 미국은 유연하게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를 유지하고 국가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

미국의 이민 정책은 이민자들이 미국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고 다민족 융화와 함께 놀라운 성공으로,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 경제적인 성공을 달성할 수 있었다. 국가적으로 이민은 미국 경제 성장에 필수 조건인 노동력을 제공해 주었고, 쇠퇴하던 도시들과 미국의 경제를 급부상시켰고, 세계 최강국으로 또한 지도자로 부상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1980년부터 1996년까지 한인 이민자들이 매해 3만 명 이상이 들어와서 한인 교회와 공동체가 활기차게 성장했다. 한인 이민 교회는 외롭고 고달픈 타향살이에 용기와 소망으로 위로를 주었고 생활 정보와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 지혜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적응하고 풍요해지면서 모국에 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국이 생각과 생활에서 성숙하고 번영할 때 우리가 자부심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은 우리에게서 떠날 수 없는 접두사이다.

이민 사회와 교회

이민 사회에서 종교/개신교회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다. (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초월의 경지로 승화하여 이웃을 향한 동정이 솟아 감싸 안는 공동체 의식에 이른다. (2) 과거의 상처는 접어두고 “상처받은 치유자”로 화해한다. (3) 겸손의 하향은 인간의 성숙한 태도로 섬기는 지도자로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일에 행동으로 기여한다.

여기서 인류학(인류의 문화와 체질에 관한 문제를 연구)과 사회학(사회관계의 여러 현상 및 조직의 원리, 법칙, 역사 따위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에서 흥미로운 시각에 접해 보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인간 행동의 당혹스러운 복잡성을 지적하고 이해(verstehen)를 제안했다. 영국 빅토리아(1809~1901) 시대의 인류학은 주로 “원시적인” 사람들의 풍습과 문화를 다루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고한 자료를 보고 연구해서 “안락의자” 인류학이라고 하고 인류가 야만 시대에서 문명 시대로 자동으로 진화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새로운 “현지 조사” 인류학은 현지에 들어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 언어를 배우고 관찰하면서 외부 관찰자가 보는 견지와 비교하여 진전시킨다. 이들은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 1858~1917)의 주장으로 종교적 관념과 제의들이 사회적인 실재를 반영하는 이미지로, 사회 구조와 속박이 믿음과 가치관, 습관과 예식, 모든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생각의 범주들까지 그 틀을 잡아 준다는 전제를 받아들였다. 다시 말하면, 종교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같은 것으로 보고 종교의 사회적인 역할을 탐구하기에 이르렀다.

한인 이민자들이 새 땅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현지 조사” 인류학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 와서 한반도와 다른 역사적, 지리적인 배경에서 다른 언어를 배우고 적응하면서 한국과 다른 차이에서 좌절도 하고 환희도 하면서, 자연히 한국 것과 비교하면서 우리가 지닌 시각으로 이해하고 그러는 가운데 배우면서 적응하게 된다. 외부인의 시각이 이곳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작용하고 그러기에 소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한인은 인천 공항을 떠날 때의 생각 수준을 지닌다는 딱한 실정으로 새로운 이민 사회에서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발전하고 향상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다.[iii]

이제 이민 사회에서 교회의 새로운 역할을 설파하는 이들의 시각을 들어 보자. 세상 문화에 포로가 된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구출을 부르짖는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는 “신자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믿는 것”[iv]으로 세 가지 요소인 신앙고백(교회가 믿는 내용), 신학적 성찰(현대 세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는 지적인 싸움), 그 고백과 성찰에 근거한 덕목의 개발(생각과 실천을 결합하는 도덕적인 영성)[v]로 이해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자기 나라에서 지닌 종교를 가지고 와서 익숙한 믿음에서 안위를 받고 동일감을 유지한다. 자기의 종교적인 번영으로 자부심을 지니고 자녀들을 양육한다.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이민 사회에서 외적인 성장은 보람된 결실의 표로 간직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할 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지닌 보수와 이곳에서 배우는 진보가 모두 소중하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보수와 진보를 한 몸에 겸할 때 사람은 비로소 위대해진다”[vi]라고 했다.

종교를 이론화하는 신학은 인간의 곤경에서 시작하여 믿음을 해석하면서 동기를 유발하고 의미와 보람을 찾아 안위와 도전으로 이에 합당한 행동을 촉진한다.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를 단권에 집약한 존 프레임(John M. Frame)은 철학과 신학을 세계관으로 보고 신학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삶의 모든 면에 적용하는 것”[vii]으로 실천적인 정의를 내린다.

교회의 사회적인 과제를 “책임 있는 사회”(Responsible Society)로 전개한 보스턴대학교의 월터 뮬더(Walter G. Muelder, Martin Luther King Jr.의 스승) 학장의 뒤를 이어 브라이언 맥라렌(Brian D. McLaren)은 교회를 보다 나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공정하고 관대한 기독교”(A Just and Generous Christianity)를 추구하여 동정을 지니고 동료 인간들의 짐을 나누어 지는 공정한 경제와 평화로운 세계 공동체의 태동을 위해 행동하는 새로운 믿음을 제창한다.[viii]

이민 사회는 비단 종교적인 측면만이 아니고 전인적인 과제로, 철학, 신학, 정치, 경제, 역사, 인문, 심리학이 공헌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과제로, 앞으로 알찬 연구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ix] 이를 위해 이론과 실천의 일치(coherence of theory and practice)로 실천에서 시작하여 이론을 정립하고 이론을 현장에서 시험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전중현 목사 Ph.D.
[email protected]
LID Leadership Journal 2018


[i] Jim Wallis, America’s Original Sin (Grand Rapids: Brazos Press, 2016), 219.

[ii] Peter D. Salins, Assimilation American Style (New York: Basicbooks, 1997), 61.

[iii] Dietrich Bonhoeffer는 1924년 18살 때 이탈리아 여행 중 북아프리카에 가서 관광객과 아마추어 현지 조사 인류학자와 교차하는 경험을 피력한다. Charles Marsh, Strange Glory (New York: Alfred A Knopf, 2014), 36.

[iv] David Wells, No Place for Truth, 김재영 역, 신학실종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06), 159.

[v] Ibid., 168.

[vi]우찌무라 간조, 김유곤 역, 로마서 연구 (서울: 크리스챤서적, 2004), 46.

[vii] John M. Frame,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and Theology (New Jersey: P&P Publishing, 2015), 4.

[viii] Brian D. McLaren, The Great Spiritual Migration (New York: Penguin Random House, 2016), 207~208.

[ix] 한국의 이민에 관한 저술로 오상철의 이민신학 (서울: 쿰란출판사, 2008)과 하동수의 한국인: 밖에서 자화상 77 (서울: 새한기획출판부, 2000)이 있다. 필자는 사돈 이시갑 선생(미국 의대 은퇴 교수)의 권유로 이민교회를 집필 중으로 이민자(immigrant)보다 이민교회(immigrating church)를 현재 진행형으로 보고 지금도 한국의 얼을 이 땅에 펼치는 심도 있는 구상을 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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